1977년 용산의 미 8군 사령부에 도착했을 때 사진.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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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기억
당신은 우연찮게 눈물을 “팡” 터트린 경험이 있는가? 그 이야기를 지금 하겠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안겨준 재앙 중 하나가 우리 모두를 방구석에 처박아 놓고 넷플릭스(Netflix)나 유튜브(YouTube)를 보며 시간을 소비하는 다소 무기력한 사람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와이프는 ‘미스터 트롯’을 보고 또 보고, 그러는 그녀가 너무나 이상했다. 가만히 앉아 TV 시청만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 정도로 치부하던 나였다.
# KBS ‘가요무대’와 ‘미스터 트롯’
우연히 KBS ‘가요무대’를 유튜브로 보았다. 나의 대중음악은 70년대에 고착되어 있는데, 그것도 로큰롤(Rock & Roll)이 내가 선호하는 장르, 따라서 한국 대중가요에 대해서 다소 무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이 지긋한 박재란씨 같은 옛 가수들이 출연해 흘러간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처럼 여러 편을 앉아서 시청해본 적이 없다. 조용한 아침, 소파에 앉아 커피 한잔을 들이키려는 순간, 어느 여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TV 모니터 앞으로 다가간 나는 그 가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처음 본 그 순간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으니까!
# 알아보기 힘들게 변한 그녀
그러나 분명 친숙한 그 얼굴과 그 독창적인 목소리는 나에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수수께끼(enigma)같은 존재로 다가오면서, 기필코 풀어야만 하는 고르디우스의 손잡이(Gordian Knob)가 되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통하여 그녀의 오래전 방송 영상을 뒤졌는데….
그 누가 그랬던가? 묻어둔 과거가 안전하다고, 잊혀진 과거가 아름답다고.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과 헤어짐은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된다고….
TV에서 다시 만난 80년 초 그녀의 너무도 앳된 모습, 가늘 댕댕한 몸매, 내가 기억하는 그 오리지널 모습을 하고 TBC 무대에 선 모습이 나왔다. 순간, “팡” 터진 뜨거운 눈물. 그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옛 추억과 밀려오는 연민 그리고 정수리에서 막혀 풀어지지 않는 고통이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양미간을 지끈 엄지로 누르며, 솟아오르는 눈물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40여년이 지난 세월. 강물이 다리 밑을 수없이 지났건만, 밑바닥에 가라앉아 그대로 떠내려가지 못한 아픔의 상처가 어떻게 다시 부표(Buoy) 마냥 부상하여 강물 위로 떠오를 수 있을까? 인생에서의 이정표는 때와 장소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들로 인해 정해지는데, 그녀가 내게 남긴 이정표는 어떤 것인가?
#그녀가 남기고 간 이정표
그렇게 “멍” 때리다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그녀의 히트곡들을 매일 듣고 또 듣게 되었다. 와이프는 성격이 원래 “쿨”해서 이런 나의 정신적 변화를 전혀 감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이프지만 그녀의 변화무쌍한 남편이 같은 가수의 곡을 수없이 듣는 것이 조금은 이상 했던 모양이다.
“누구야? 처음 보는 가수네” “응, 별로 유명하지 않아.”
“목소리가 허스키해서 좋다, 나이가 꽤 됐는데, 수술 많이 했다. 가수 이름이 뭐야?” “…”
“왜 말이 없어?” “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인데 말 좀 이쁘게 하자.”
“아이참, 왜 그래? 가수 이름이 뭐야?”
그랬다. 불과 며칠 전, 처음 그녀의 노래를 듣고, 황급히 찾아낸 그녀의 이름, 그리고 오랫동안 내 망각의 늪에서 잊혀져있던 그 이름 석 자. 그녀의 이름을 내 입으로 내뱉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사치스러운 고백
나를 바라보며 아직도 내 대답을 기다리는 와이프를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무거운 입을 때며, 그녀와 나의 관계를 설명하였는데 지나고 나니 말을 하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솔직함이란 때론 사치스러움이다. 혼자 알고 지나치면 되는 과거를 왜 와이프에게 털어 놓았을까? 나름, 내 상처를 조금이나마 위안 받으려고? 아니면, 순순했던 기억뿐인 그 사랑이 너무도 당당했기에? 이러한 질문에 정답이란 없는 것 같다.
나와 그녀의 첫 만남과 연애 스토리는 넘어가고, 메인 스토리인 헤어지는 장면으로 직행하겠다. 그녀와 데이트 하던 당시, 그녀는 그저 가수 지망생 정도였다. 그녀의 강인한 눈매 그리고 상당히 도도한, 자존심 넘치는 모습이 그녀의 매력 포인트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의 스타성을 알아보았다. 하늘에 반짝이는 스타들은 낯에는 보이지 않는다. 재능이 있다 하여도 때와 찬스가 주어져야 하는 법이다. 천재는 금방 알아볼 수 없어도 스타 소질은 감출 수 없는 것. 허나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고집스러움과 도도함이 그녀의 활동 방식(Modus Operandi)이어서, 순탄한 여인으로, 아니, 원만한 연예인의 삶을 살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눈먼 사랑
그녀는 데이트 때 돈 잘 쓰고 시간 많은 나에게도 까칠하게 대했다. 그런 그녀가 나는 그냥 좋았다. 아마도 젊음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젊은 때는 눈먼 사랑이 자주 찾아오고, 나이가 들수록 그 수가 줄고, 그러다 영원히 사라지는 그런 눈먼 사랑을 나이 17살에 했다. 그녀는 20살, 꽃다운 나이. 왜? 나는 연상의 여인들과 연애했을까? 그 이유는 군인이었던 나와 달리 같은 나이 또래 여자들은 모두 미성년 고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영동 금성극장에서 서부영화를 보고, 둘이 오르막길을 걸어 숙대 앞 ‘A-1 분식집’에서 떡볶이 먹으며 팝송을 듣던 중, 그녀가 미국생활에 대해 물어왔다. 미국 생활이라야 별반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자랑이라고, 7-11에서 일했던 경험(수많은 양담배 종류, 다양한 아이스크림, 통금 없는2 4시간 영업 등등)을 말하다가 내가 뜬금없이 말했다.
“왜? 가고 싶어?” 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놀라웠다. 또한 너무나 그녀다웠다. “응, 한번 데려 가봐.” 내가 제법 정색하며, “정말?” 하고 말하자, 코딱지만한 부스에서 음악을 틀던 DJ가 판을 갈고, ‘치직’거리는 음판 소음과 함께, Bobby Darin의 ‘Beyond the Sea’가 흘러 나왔다. 그녀는 답했다.
“그럼, 우리 장난하냐?”
#자유로운 삶, Born Free-Andy Williams
그렇다. 산다는 것 장난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그리고 그녀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한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 때는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모르면서 살았다. 나, 그리고 그녀, 모두 미국이란 나라에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아무런 사회적 구속이나 여건에 관계없이….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음 이야기는 젊었던 우리들의 절실했던 눈물의 이야기다. <다음에 계속>
(jahn8118@gmail.com)
<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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