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선거의 키워드는 단연 ‘트럼프’다. 거의 모든 뉴스의 초점이 트럼프 당락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 자체의 대선 결과는 별 관심사가 아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32% 포인트나 앞서고 있으니 궁금해 할 것도 없다 그보다는 뜨거운 접전을 벌이고 있는 몇몇 주민발의안들의 통과 여부가 훨씬 예측하기 힘들다.
솔직히 주민발의안(proposition) 투표는 좀 부담스럽다. 우선 내용이 대부분 복잡하다. 그러나 정확한 이해 없이 찬반을 선택하기엔 우리의 일상과 직결되는 이슈가 너무 많다. 나 역시 지난주 배달된 우편투표 용지 반송을 며칠 미루었다. 프로포지션 ‘공부’를 위해서다.
금년에도 12개의 프로포지션이 11월 선거에 회부되었다. 2016년 대선 땐 무려 17개였다.
캘리포니아 정치에서 성역처럼 되어온 ‘납세자의 반란’ 프로포지션13을 대폭 개정하는 상업용 부동산 재산세 인상안을 비롯해 아시아계 학생들의 대입 역차별이 우려되는 어퍼머티브 액션 부활, 우버 운전자들의 정규직 대우 무효화, 형사법·선거법 개정, 신장투석 진료소 규정 강화, 그리고 렌트 컨트롤 확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들이 망라되었다.
이슈마다 파워풀한 이해집단들이 포진한 찬반 진영의 대결이 얼마나 치열한가는 프로포지션 선거전에 쏟아 붓고 있는 엄청난 돈의 규모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가히 ‘전쟁’이다.
폴리티코가 집계한 자금 총계는 10월13일 현재 6억3,000만 달러에 달한다. 우버와 리프트 회사가 주도하는 프로포지션 22 찬성 캠페인의 1억9,000만 달러, 투석진료소 규제하는 프로포지션 23 반대 캠페인의 1억 달러 등 핫이슈 몇 개에 몰려있다.
그중 하나가 렌트 컨트롤을 강화하는 프로포지션 21이다. 시나 카운티 등 로컬정부가 15년 이상 된 주거 건물에 대한 자체적 렌트 규제를 제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렌트 컨트롤 확대 발의안 프로포지션 10이 부결된 게 불과 2년 전이다.
캘리포니아의 렌트 규제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프로프지션 10이 부결된 후 주의회가 매년 렌트비 인상을 5%+물가상승률로 제한하는 렌트 규제안을 통과시켰고 주지사 서명으로 금년 1월1일부터 발효되었다.
미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법의 하나이지만 렌트비가 소득보다 훨씬 빠르게 인상되는 것을 허용하고, 그나마 2030년엔 시효가 만료된다고 LA타임스는 분석한다.
당시 프로포지션 10을 추진했던 지지자들이 금년에 다시 벌인 ‘렌트 컨트롤 전쟁’이 프로포지션 21이다. 아파트 소유주협회와 부동산 투자기업 등이 주도하는 반대진영에선 소모적인 ‘재탕’이라고 비난하지만 차이는 분명하다.
각 지역정부들의 렌트 컨트롤 조례 통과는 현행 코스타-호킨스 임대주택법에 의해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다. 1995년 공화당의 피트 윌슨 주지사가 서명한 임대주 보호 주법이다. 프로포지션 10은 코스타-호킨스법의 폐지였다.
프로포지션 21은 그 법의 폐지가 아닌 축소다. 2년 전과 달리 가이드라인도 제시한다. 현행법이 규제대상에서 제외시킨 개인주택과 콘도미니엄을 포함시켰으나 소유주택이 1~2채인 개인 임대주는 제외시켰다. 임대주택 비즈니스업자가 아니라면 별 불이익은 없다는 설명이다.
이 발의안이 통과되면 렌트 컨트롤 대상 아파트가 대폭 늘어난다. LA의 경우 14만1,000개 유닛이 새로운 규제대상으로 추가된다. 현재보다 23% 증가다, 아파트를 옮겨야 하는 세입자들에게 숨통을 트여주는 조항도 있다. 새로 입주하는 테넌트에게 임대주가 시장가격에 맞춰 임의로 부과할 수 있는 렌트비에 제한을 가해 첫 3년 동안 15%까지만 인상을 허용한다.
중산층 세입자들이 도심지 직장에서 통근거리가 합리적인 곳에 살 수 있도록, 가난한 세입자들이 홈리스로 전락하지 않도록, 렌트 컨트롤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지자들은 강조한다.
반대 주장에도 일리가 충분하다. 이미 주택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필요한 아파트 신축을 위축시켜 주택부족과 가격인상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극단적이고 영구적인 규제가 가해질 것이며 주택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도 경고 한다.
통과 전망은 장밋빛이 아니다. 2년 전 한 번 부결된 데다가 6,800만 달러나 뿌린 반대 측의 자금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9월 하순 UC버클리의 서베이에 의하면 찬성과 반대 여론이 각각 37%로 동률이었으나 미정이 26%나 되어 아직도 결과 예측은 상당히 힘들다.
그러나 또 부결된다 해도 렌트 컨트롤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전국에서 렌트비가 가장 비싼 곳 중 하나다. 렌트비가 가장 높은 7대 도심지역 중 5곳이 이곳에 있다. 1,700만명 캘리포니아 세입자의 30%가 소득의 절반을 렌트로 지불해야하는 형편이다.
주택난의 궁극적 해결책은 충분한 서민주택 신축이지만 온갖 관련법 개정과 막대한 기금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요원한 과제다. 당장은 지역에 맞는 렌트 컨트롤 확대가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덜어주면서 주택난으로 인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피난처인 ‘마이 홈’의 소중함을 매일매일 체감하는 팬데믹의 위기에선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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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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