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인구 사회학자인 피터 라슬렛은 1989년 ‘인생의 새로운 지도: 제3기 인생의 출현’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저서에서 그는 제3기 인생의 개념을 체계화했다. 라슬렛은 인간의 삶을 4기로 구분한다.
제1기는 태어나서 취업할 때까지이고, 취업해서 퇴직할 때까지가 제2기다. 퇴직해서 건강할 때까지가 제3기이고, 건강을 잃고 죽을 때까지가 제4기다.
그는 누구나 거치는 4기의 인생에서, 제3기야말로 진정한 개인적 성취의 시기이며, 가장 행복감을 맛볼 수 있는 시기라고 정의했다. 취업해서 퇴직할 때까지의 제2기가 행복의 절정을 누릴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라슬렛에 의하면 제2기 인생은 불가피하게 떠맡게 되거나 목적의식 없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대로 계획을 세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시기는 사실상 제3기뿐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제3기가 시작되는 65세 이후의 삶이 정말로 보람되고 행복한 시기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고 할 수 있을것 같다. 64세까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는 한 가정의 전업주부 및 직장의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여러 책임과 부담을 지고 고달프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녀들은 출가했을 것이고 직장에서도 은퇴해 풍족한 자유시간과 정신적인 여유속에서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니 “인생은 65세부터”란 말이 과장된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며칠전 뉴욕으로 가는 고속도로 선상에서 앞에가는 차 범퍼에 붙은 스티커를 보며 웃은 적이있다. ‘은퇴자: 모셔야 할 상사도 없고, 외상 청구서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다’(No Boss, No Bill, No Stress).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은퇴한 나는 이제 자유인이란 말이 되겠다.
그러나 제3기 인생이 아무 노력없이 누구에게나 행복할 시기일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고령화 시대를 앞둔 우리 시대의 중장년층과 노인층이 더 당당하고 만족하게 살아가려면, 이에 걸맞는 제3기 인생의 준비와 마음상태가 필요할 것이다. 이 필요 조건 중 하나가 나이가 들어도 자립 하겠다는 다짐이다.
가능하면 자녀에게 의지해서 살지않고 내 주변의 일상사를 책임지고 할 수 있다는 다짐은, 나이 들면서 위축되기 쉬운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준다. 체력이 허락하는한 세탁과 집안 청소와 요리 및 정원관리는 직접 하는 것이 좋다. 내 일은 아직까지 내가 할수있다는 행복, 그 행복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 나이에 어울리는 자신만의 생활패턴을 찾아내어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다음에는 죽을 때까지 일하고 놀고 배워야 한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아무일도 하지않고 집에서 편히 쉬려고 하는 사람들 보다 정신건강이 더욱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때 “일한다”는 의미는 꼭 돈을 벌라는 뜻이 아니다. 수입이 없는 자원봉사도 노년기의 자존심을 함양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세번째는 자기 속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를 갖는 것이다. 좋은 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누구에겐가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항상 소중한 친구의 존재를 중요시하고 그 관계를 잘 유지하려 노력해야 한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함께하는 친구는 노년기의 삶에 큰 위로가 될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고독력’을 키우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의지나 바램과 상관없이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세월이 가면 배우자와 사별하는 순간도 오고, 친한 친구도 세상을 먼저 떠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고독력이다. 외롭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기 보다는 외로워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과 고독력을 키우는 일은 평소에 노력해야 한다. 혼자 품위있게 책도 읽고, 혼자 산책도 하고, 혼자 식사하는 습관도 익히고, 혼자 여행도 해 보아야 한다.
‘긍정적 사고’란 저서로 유명한 빈센트 필 박사는 20여년전 뉴욕에서 “노년의 행복”이란 강연을 했다. 강연후 어떻게 72세였던 ‘필’박사가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이를 잊고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Forget your age and live your life)라는 유명한 대답을 했다.
이때 그가 이야기한 ‘살라’는 말은 자기의 삶을 즐기며 의미있게 살아가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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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희 / Lee & Asso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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