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할아버지 생신에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이 방문하였다.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온 어린 손주를 옆에 앉혀놓고 케익을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랑스런 손주를 보고 “진영아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으니 손주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이어서 “너는 앞으로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그랬더니 그때야 이해를 한듯 곧바로 “게이머”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랬다. 아니, 게임을 많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게이머가 된다니 걱정이 되었다. 그때 며느리가 나서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제작자가 되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앞으로 너는 커서 무엇이 될거니?” 물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똑똑한(?) 아이들이고 꿈이 구체적이다. 손주에게 꿈이 뭐냐고 물은 뒤에 몇분이 흐른듯 했다.
손주가 대뜸 “그러면 할아버지는 꿈이 뭐예요?” 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이때 침묵이 몇초 흐르자 당황한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 할머니가 순발력을 발휘해서 “할아버지는 앞으로 축구 코치가 되는 것이 꿈이야” 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몇 년 전에 전역한 상태였다. 전역을 한 후, 하고 싶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여행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못다한 운동도 하고 또 산을 좋아하니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산을 다녔다. 그런데 하고 싶은 그것도 몇년을 해 보았으나 마음 한 구석에 뭔가 모르게 차지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인 의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프리카에 의료봉사를 가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가 아닌데 어떻게 가느냐”고 했더니 걱정하지 말고 축구공만 준비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는 차에 의료봉사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열흘간의 여정으로 출발 하였다. 아프리카 의료봉사지역에 도착하니 환경이 너무 열악한 곳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신발도 없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한국의 1950년대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하루 여정을 풀고 아침이 되었는데 벌써 환자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몇십미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왈, 이때쯤 되면 의료봉사팀이 온다는 것을 알고 어김없이 수십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온다고 한단다.
친구는 진료 준비를 마치고 그에게 다가와 축구공을 가지고 저쪽 들판에 가 있으면 아이들을 보낼테니 같이 축구하라고 한다. 난감하던 차에 운동장에서 몇분을 기다리니 아이들 수십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친구는 전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무 몇개를 대서 조그마한 골대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두팀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가져온 축구공으로 축구를 하였다.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고 신나게 뛰고 있었다.
친구가 같이 가자고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곳의 부모들은 아이들만 남겨 두고 치료를 받으러 올 수 없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할일이 없으니 잡초를 둥그랗게 말아 칡넝쿨 껍질로 감아 축구공을 만들어 부모가 치료 받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축구를 하는 것을 친구인 의사는 보았던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깡마르고 왜소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프리카가 못 산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상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친구에게 내년에도 가겠다고 하니 친구도 기뻐했다.
동대문에 가서 30여켤레의 운동화와 축구할 때 두팀을 구분할 청색과 홍색의 조끼도 준비했다.
그때부터 의료봉사 가는 날이 설레고 기다려진다고 한다. 인간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낄때 행복해지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도 아름다운 꿈이 있다면 삶에 활력소는 물론 사회를 풍요롭게 해주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 나의 손주가 “할아버지의 꿈은 뭐예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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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집 / 조종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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