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무훈 부회장이 나에게 선물한 모바도(MOVADO) 시계.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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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것 같으나 복잡한 삶
복잡다단한 우리의 삶 속에서 늘 갈구하는 것 중 하나가 미니멀리스틱(minimalistic)한 삶이다. 그러나 집 살림은 자꾸만 늘어만 가고, 인간관계 역시 자꾸만 얽히고 설키만 간다. 그 많은 시계들 중에 가장 심플, 단결한 디자인의 대명사는 스위스 산 모바도다. 너무나 깔끔한 클래식한 모바도 시계 판에는 날자, 요일이 없다. 몇 시인가를 알리는 아라비안 숫자 번호도 없다. 육안으로 시계가 죽지 않고 작동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확인 장치인 초침마저도 없다. 오직 몇 시, 몇 분인가 만을 알린다. 참으로 간결하다. 세상 삶이 이렇듯 심플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살이가 복잡할수록 우리는 남에게 보이고 싶은 것만 보이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난해한 부품을 소재로 한 시계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속 깊이 묻어두고, 우리는 앞에 보이는 facade(외관)에 인생을, 그리고 시계는 운명을 건다.
# 낙마로 인해 뛰어든 세탁 인생
1999년,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경찰 간부 생활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보니 앞날이 캄캄했다. ‘낙마(落馬)’란 말뜻이 그리도 가슴 저린 말인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낙마란 무엇인가? 사람이 높은 말 위에 있다 떨어지면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신체의 아픔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수치심이다. 그래서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다. 나만 보고 살아왔던 전 아내는 커리어가 없었고, 고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딸들은 돈이 한참 들어갈 사춘기 나이였다. 그래서 죽자고 뛰어든 사업이 세탁소였다. 그러나 25년 공무원 생활에, status quo(현재 상황)에 젖어 살던 나에게, 현실은 처참했다.
하지만, 살아야만 했다. 어렵게 돈을 모으고 빚을 내서 공장을 열었다. 그 과정이 가시밭길이었다. 캄캄한 새벽 아침에 세탁소 문을 열고, 보일러를 올리고, 정신없이 하루를 소비해야만 잠시나마 과거와 멀어질 수 있었다. 초와 분을 다투는 작업공간에서 딜리버리 시간에 쫓기고, 손님 옷 찾으러 오는 시간에 일상이 맞추어졌다. 복더위에 온몸이 젖도록,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돈이 모아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탁업에 뛰어든 나에게 어느 날 김경우 세탁협회장이 찾아왔다. 그리고는 같이 봉사 활동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직 터전도 제대로 잡지 못한 나에게 봉사란 너무 어려운 요구였기에 거절했다.
# 이무훈 부회장과의 만남
그리고 며칠 후, 이무훈 부회장이 찾아와 반갑게 인사하며 나를 잘 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Washington Cash and Carry Wholesale’에서 일할 때, 내가 경찰복 입고 오고 가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는 것이었다. 순간, 과거가 그리워졌다. 우리들의 과거는 행복과 슬픔을 모두 품은 마법사—누군가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해주면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은 그런 충동이 인다.
그러면서, 자신 같이 교육도 못 받은 사람도 서로 돕고 살기 위해 협회에 나와 봉사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숨어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역정을 냈다. 많은 세탁인들에게 정보 교환의 유익한 창구 역할도 되고 협회는 나 같이 영어 잘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며 신신 당부 하는 것이었다.
200여년 역사의 미국 세탁업은 프랑스, 이태리, 그리고 유태계를 거쳐 1980년대 이르러, 서서히 한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업종이 되었다. 2002년 한인 최대 단일 업종이었던 세탁업계에 드라이 클린 디포(Dry Clean Depot)라는 대형업체의 진출로 인해 대다수 소규모 한인 세탁업소들은 사업 경쟁 과 법적 대응이란 큰 과제에 직면하여 있었다.
그런데, 섄틸리(Chantilly)에서 세탁업을 하는 김종호 씨, 김문한 이사, 이필재 전 회장 등의 봉사활동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아 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해에 나는 세탁협회장이 되었고, 이무훈 부회장 그리고 임원 모두 거의 매일 열심히 봉사활동을 펼치며, 워싱턴 지역 곳곳의 수많은 세탁업소를 탐방하고, 각 지역 의회에서 대형 세탁소 저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사업을 달성한다.
# 주얼리를 즐기던 남자
이무훈 부회장은 나보다 연배였다. 풍만한 체구에 중년 신사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멋있는 회색 머리. 그에 어울리는 양복에 타이 매는 것을 좋아했고 보통 중년의 한국 남자와 달리 주얼리 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 면에서 스타일은 이탈리안에 가까웠다. 페어팩스(Fairfax)에 위치한 세탁소도 무척 장사가 잘돼서, 돈도 잘 벌었다.
무엇보다, 그분을 좋아했던 이유는 사람이 맑고 정직했다. 내 앞에서 돈 자랑(항상 주머니에 백불 종이돈을 고무줄로 묶고 다녔다. 나에게 자주 보여주며, 얼마인지 액수도 알려주었다) 하기 좋아했고, 새 양복을 사서 입으면 상표를 까서 보여주며, 어디서 얼마에 구입하였는지(때때로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기도 했다) 꼭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순수한 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순박한 행동에 나는 놀란 표정과 함께 박장대소하곤 했다. 그는 술은 안 즐겼지만 술자리에 빠지는 적이 없었고, 그의 18번은 송대관 씨의 ‘네 박자’였다. “~~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 박자 속에 인생도 있고, 슬픔도 있네~~~”
이무훈 부회장은 풍채에 안 어울리게 노래 솜씨도 좋고, 수다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 촌스러움에서 오는 정다움
그런데 그 모든 그의 조금 촌스러움이 나는 너무 좋았다. 사업을 하는 사람치고 자기 목숨과도 같은 매상이나 사업 정보 그리고 사생활까지도 까발리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는 마치 천진난만한 어른 아이 같았다. 다른 사업자들이, 그의 단순함을 무지로 치부할 때, 그는 군더더기 없는 그의 순수함으로 사업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수년 후,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역이민 간다고 했다. 우리는 단둘이 한강 식당에 앉아 그의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고 있던 중, 그가 느닷없이 차고 잇던 모바도(Movado) 손목시계를 내게 내밀었다.
“안 회장, 시계 좋아하지? 이거 안 회장 가져. 뭐, 따로 준비한 선물도 없고 해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떠나는 사람에게 내가 선물을 해야지….”
언제 준비하였는지 뒤판에는 그의 이름 그리고 내 이름까지 새겨 있었다. 남자들끼리의 우정이란 이런 것인가? 마음이 뭉클했다.
#친구 따라 강남
또 다시 몇 년 후, 한국에 있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번 놀러 오라며 그 특유의 수다가 이어졌다. 당시 사업 일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지만 며칠 만에 항공원을 사서 달려갔다. 서울 어느 출판사의 부사장으로 일하던 그는 말이 부사장 일뿐, 그의 친구(사장)의 뒤 처리만 하는, 그래서 여사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처지가 돼있었다. 그날 저녁 술자리에서 물어 보지도 않았건만 그는 주머니에서 프랭클린 백불 지폐 대신 신사임당 지폐 뭉텅이들을 꺼내 보여주며
“안 회장, 나 아직 괜찮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크게 웃었지만 왜인지 처음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한결 나이 먹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또한 짠해 보였다.
#병마
그리고 시계 바늘은 돌고 돌아 또 몇 해가 지났다. 바쁜 일상 중에 뜻밖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 회장 나야. 지금 미국 딸집에 왔어.”
그날로 달려가서 만난 그는, 눈부시던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있고 복장도 허름했다. “나 췌장암이야. 닥터가 오래 못사니 보고 싶은 사람 다 보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살래.”
그렇게, 내뱉듯이 말하는 그의 말에 허무함이 묻어 나왔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떠벌림은 허무했고, 웃음은 씁쓸했다. 그 대신 내가 수다를 떨며, 나 홀로 술병을 비웠다.
언제까지 미국에 머물 거냐고 물어보니 “나, 이제 안 회장 봤으니 내일이라도 떠나야지.”라고 말했다.
도저히 고개 들어 그를 쳐다 볼 수 없었다. 혼술, 그 술잔에는 비가 내리고 술 탁자 밑에 숨어있는 내 손목 위의 모바도 시계는 시간이 멈춘 듯, 초침도 없이 잠잠히 날 쳐다본다. 어쩌라고….
그렇게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 지 벌써 오래건만, 그에게 전화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인간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그리고 시간 앞에 너무나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그가 내게 선물한 초침 없는 모바도는 죽은 듯이 그렇게 혼자 달려가고 있건만. <다음에 계속>
jahn8118@gmail.com
<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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