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1위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 북서부의 보석 같은 도시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고 있다. 연평균 기온이 20도 내외로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다. ‘마크퇴인’은 “내가 겪은 가장 쌀쌀한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엄청난 문화유산과 맛있는 음식, 파도와 굴곡진 언덕 위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 눈 부신 햇살이 부드럽게 속삭이는 태평양과 맞닿은 항구 도시, 히피의 고향, 골목마다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도시가 샌프란시스코다.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한국의 ‘홍대 앞’이나 ‘이태원’처럼 구분 짓는 문화적 구역을 ‘네이버 후드’라고 하는데 샌프란시스코 네이버 후드들은 서로 겹치거나 교차하면서 공존하고 있다.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들이 있고 도시 전역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빅토리아풍의 목조 주택들도 볼거리며, 유명한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지인 나파밸리가 있고 컴퓨터의 본고장인 실리콘 밸리도 있다. 도시의 역사가 맥박처럼 힘차게 뛰고 있고 트램, 케이블카, 경전철, 일반 버스, UBER 등의 여러 교통수단이 네이버 후드들을 유혹하며 편리하게 이어주고 있다.
20세기 초 은광으로 돈을 많이 벌었던 대부호들로부터 인스타그램이나 테슬라 자동차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초창기 사람들은 1849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을 “49ers”라고 불렀으며 샌프란시스코 미식 축구팀 이름이 “49ers”인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 금광의 발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전만 하더라도 인구가 1천 명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도시였는데 1년 후인 1850년에는 2만5천 명으로 늘어났고 오늘날은 뉴욕, 엘에이와 더불어 3대 거대 도시로 발전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상징물인 금문교와 인연이 깊다. 1933년 1월 5일 착공해서 1937년 4월 19일, 4년 만에 완공한 당시로써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현수교였고, 공사장에 노동자로 많이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는 많은 전문가가 완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할 정도로 난공사였고, 별다른 기술이 없지만 먹고 살아야 했던 중국인 단순 노동자들은 다리가 완공되기까지 40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금문교를 지날 때 희생된 중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지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도시 전체에 심한 급경사가 많아 일찍부터 노면전차 시스템이 발달했고, 1873년 첫 운행을 시작한 케이블카는 도시 전체를 바둑판처럼 연결해 놓았으며, 매주 일요일 부둣가의 페리 빌딩 앞에는 파머스 마켓이 열리는데 인근 소노마 지역에서 젊은 농부들이 가지고 온 싱싱한 과일과 채소들을 살 수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베이브릿지의 점등된 밤 풍경 또한 일품이다. 금문교 쪽을 향해 조금 걷다 보면 클램차우더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옛날 어부들의 마을이라고 하는 “피셔맨 워프”가 나오는데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금문교와 더불어 누구나 한 번쯤은 찾는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있고, 여객선과 낚싯배들이 정박해 있는 부두 너머에는 영화 <대부>의 촬영지이자 악명 높은 감옥이었던 “알카트라즈”섬이 보인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폐허처럼 보이고 관광객들에게 지난날의 추억을 말해주는 형이상학적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당시에는 섬 주변에 식인 상어들이 살고 있어 죄수들은 탈출해도 감히 바다를 헤엄쳐 도망갈 생각을 할 수 없었다니 가슴이 서늘해 옴을 느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트랜디한 곳이 즐비한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도시 남쪽에 위치한 미션 스트릿이 있다. 이곳에는 남미 이민자들이 그린 그들만의 문화가 생생하게 잘 표현된 벽화와 고급스러운 부티크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가난과 범죄로 악명 높았던 지역이었지만 저렴한 집세를 따라 이주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이제는 도시의 유행을 선도하는 동네가 된 것이다. 특히 멕시코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남미 음식인 ‘부리토’를 사 들고 인근 ‘돌로레스’공원의 잔디밭에 앉아 그들의 웃고 떠들며 입맞춤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민자들의 구역 미션 스트릿이 감각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면 중국 사람들의 챠이나 타운은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 왔으며 북동쪽에는 노스 비치(North Beach)가 있다. 1870년대 제노아와 시칠리 출신 이민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레스토랑과 칵테일을 파는 피자 가게, 베이커리 숍을 운영하며 지금까지 유명세를 이어 오고 있다. 1950년대 노스 비치는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안식처였다. 특히 “베스비오”카페에는 “밥 딜런” “잭 케루악” “알렌 킨즈버그”등이 맥주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던 흔적들이 다양한 사진과 함께 실내장식으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카페를 찾는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한다.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감성과 영혼을 담은 노래가 그것이다. 전설적인 수많은 록밴드가 있었지만 재즈 가수 한 사람을 꼽으라면 1961년 페어몬트 호텔에서 “I left my heart Sanfrancisco” 를 발표한 “토니 버넷”이다. <바다 곁에 있는 나의 도시로 향하네. 나는 내 마음을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왔다네. 내게 손짓하는 언덕 위, 별을 향해 올라가는 작은 케이블카. 바람이 거세게 부는 푸른 바다 위로 그곳에 돌아갈 때면, 샌프란시스코 너의 황금빛 태양은 나를 위해 빛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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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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