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일 오후 한 가정집, 지방 법원 판사 A가 자신의 방에서 법복을 차려입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책상 위에는 모니터 두 대가 좌우로 나란히 놓여 있다. 한쪽 모니터에는 원고 측 변호인이, 다른 한쪽 모니터에는 피고 측 변호인이 역시 각자의 집에서 정장을 차려입고 자신의 차례에 발언을 이어간다. 중간에 원고 측 변호인이 있는 모니터 속 방문이 열리고 어린 아이가 들어와 원고 측 변호인에게 안긴다. 원고 측 변호인은 당황하고, 판사와 피고 측 변호인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를 지켜본다.

위에서 설명한 상황은 미래 20~30년 후 모습이 아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팬데믹 속 미국 법원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각색하여 묘사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부분의 법원도 문을 닫으면서, 많은 법정 절차도 이렇게 전화 및 화상통화 등 원격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교적 간단한 각종 신청(Motion) 및 기타 소송 절차뿐 아니라, 특허 청구 범위의 해석을 결정하는 비교적 복잡한 마크맨 구두심리(Markman Hearing)까지도 원격 진행하는 법원도 있다.

종이 문서만을 고집하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또한 올해 3월 규정을 수정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전자 문서를 통해 고소장을 받고 있다. 미국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킨 COVID-19 팬데믹은 이렇게 미국 법정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COVID-19로 인한 법정 기일 연기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전화 및 화상통화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배심원이 배석하고 직접 여러 증인의 증언이 필요한 재판은 그동안 다수의 지방 법원에서 연기되어 왔다.

현재 COVID-19 상황이 심각한 플로리다 주의 남부 지방법원은 내년 1월 초까지 배심원 재판을 연기한다고 발표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재판이 계속 연기된다면 추후 재판 쓰나미(Tsunami)가 몰려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여러 법원은 COVID-19 속에서도 신속한 재판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법정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판사와 변호인단 책상 앞에 투명 아크릴판을 세우고, 변호인과 의뢰인 간 긴밀한 대화는 헤드폰을 통해서 하도록 한다. 이런 방법들을 동원하여 재판을 시작한 법원이 일부 있지만, 아직 대다수의 연방 지방 법원의 재판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OVID-19 펜데믹의 여파로 미국 내 여러 경제 활동이 마비되고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특허 소송 건수는 올해 들어서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0년 1월부터 7월까지 연방 지방법원에 제출된 특허 소송 건수를 살펴보면, 작년 같은 기간대비 약 5% 증가하였다. COVID-19 펜데믹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20년 3월부터 7월까지 제출된 특허 소송 건수를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약 7% 증가하였다. 일부에서는 올해 들어 ‘특허 괴물’이라고 불리던 NPE(Non Practicing Entity) 소송이 증가하였고, 올해 특허 소송 증가분의 상당수도 NPE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펜데믹의 여파로 경기가 더 나빠졌고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한 불 예측성이 증가하였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특허 소송은 올해 왜 더 늘어난 것일까? 이에는 여러 의견이 있다.

첫째, 경기가 나빠지면서 새로운 수익 창출의 창구로 특허 소송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둘째, 경제적 불예측성이 높아지고 기업의 경영이 어려워진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특허 소송을 제기하여 상대로부터 보다 쉽게 합의를 끌어 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셋째, COVID-19 펜데믹이 시작되면서 재판 절차의 지연을 우려하여, 원래 올해 하반기에 계획되어 있던 소송을 일찍 제기하였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 지방 법원 특허 소송 건수는 2019년의 3,500건대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2017년 이후 처음으로 4,000건을 넘어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재판을 연기하고 있는 다수의 법원은 내년이나 내 후년에 몰려올 특허소송 재판의 쓰나미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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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호 변호사 K&L G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