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느린 걸음을 걷던 날, 참새 한 마리가 둥지를 떠나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입에 두어개 조그마한 열매를 매단 작은 가지가 그의 입에서 흔들리더니. 열매 하나를 떨궈두고 참새는 다시 가지 위로 날아 오른다. 그는 내게 열매를 전달하러 들른 전령사다. 아니다. 그는 내가 어제 밤 그리워하던 나의 혈육이다.
한국의 한가위는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태어나 자란 고향은 영혼이 자라온 공간이며 함께 한 이들과의 추억과 혈육을 정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아련해지기도 하고 때론 그 반대로 힘들고 아픈 일들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삶이란 여행에서 고향은 누구나에게 그렇듯 크고 작은 실타래를 남기며 무의식 속에 저장된다. 실타래를 하나 하나 풀었을 때 다시금 살아나고 이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들이 때론 매듭짐으로 인해 굵어지며, 부대끼며 보풀이 일고 끊겨지기도 할 것이다. 그럴때면 다시금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실로 타래를 엮어가야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지난 달 지구의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든 괴기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대규모의 산불이 꺼지지 않고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불길의 잔해들로 태양은 우리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 그 빛을 붉은 하늘빛으로 채웠다. 하늘을 바라보며 오래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린다. 그의 이름은 “붉은 구름(마피우아 루타)”. “붉은 구름”은 인디언 부족 중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보였다는 수우족의 용맹했던 추장의 이름이다. 그는 다른 인디언 추장들이 백인들에게 굴복할 때에도 백여 차례가 넘는 전투를 하며 삼십년 동안이나 저항했다. 결국 그와 그의 부족들은 백인들의 무력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쫓겨났지만 백인들에게 보낸 그의 당당함과 자연에 대한 메시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게 다가온다. 그는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대지의 무한함과 인간의 유한함을 상기시키며 인디언들이 성지로 받는 땅을 금을 찾기 위해 파헤치는 그들의 작태를 통탄했다. 말년에 눈과 귀가 멀고 심신이 약해져 운명을 달리할때까지도 후손들에게 “바람처럼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살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그들이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 백인들이 지정해준 보호구역이란 명분의 특정 구역으로 이주의 길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의 고향은 영원히 그들의 기억속에서만 살아있는 곳이 되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보호구역에서 살아야만 했던 그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내야만 했을까?
“붉은 구름”과 함께 백인들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또 다른 인디언인 네스퍼스 족의 조셉 추장을 떠올린다. 그는 전투 후 포로로 잡힌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며 무차별에게 살생하지 않았으며 인디언들에게 백인들이 감언이설로 약속한 것들이 거짓이었음을 알고 다음와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 세상에는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우리 인디언들은 적게 말하고 오래 듣는다.”라고. 그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말들이 주인없는 말들로 허공을 맴돈다. 스스로의 자물쇠로 채워두었다 그 무게 만큼이나 필요로 했을 때 자물쇠를 여는 진실함이 값지게 요구되는 때이다. 말에 무게감이 힘이 되어 세상 속에 흩어지지 않은 신뢰로 쌓여갈 수 있도록 말이다.
붉어진 하늘을 보며 “붉은 구름”에 얽힌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것은 마치 오래전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현재 우리에게 보내는 또 다른 전령처럼 느껴진다. 금을 찾기 위해 인디언들의 성지였던 땅을 파헤치는 것과 같이 지구의 땅과 물 바다와 하늘 곳곳을 파헤치고 돌보지 않았던 인류에 대한 그들이 주는 경고의 메세지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잠시 말하기를 멈추고 들어보라고 하는듯 하다. 언젠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어 안전한 길이 열렸을 때 사우스 다코타에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에 가보고 싶다. 그곳은 “붉은 구름”이 이주하여 마지막을 보냈던 역사의 현장이다. 그곳에서 그들의 후손이 보호구역 안에서의 자유가 아닌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떨궈둔 열매를 찾으러 왔을까? 나뭇가지 위에 다시 찾아온 새는 몇 번을 두리번 거리더니 다시 바삐 날아 오른다. 새도 잠시 들렀던 나뭇가지의 그 자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새는 시간의 전령사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기억하라는 말을 깜박 잊었노라고 그 말을 다시 전해주며 날아오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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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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