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미국 내 최우수 고등학교 중 하나로 꼽히는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TJ) 의 입학사정 정책 변경안을 논의 하는 것에 대한 칼럼을 3주째 써오고 있다. 그만큼 이 이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이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인 학생들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논의 진행 과정과 그 배경에 담겨 있는 인종적 편견이 나를 분노케 한다.
변경안에서 가장 큰 논의점은 입학시험의 폐지이다. 입학시험이 특정 그룹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 학교에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지 못하는 그룹 가운데에도 훌륭한 인재들이 있는데 시험 때문에 입학 기회를 놓친다는 주장이다. 대신 시험 준비에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는 가정들의 자녀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말은 안해도 그 혜택을 받는 그룹은 아시안 학생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시안 학생들이 TJ 입학을 돈으로 산다는 말까지 나왔다. 교육감은 공개 회의와 타운홀 자리에서 시험 준비에 만불부터 만오천불까지 들이는 학생들이 있다고 발언했다. 나는 이 말이 교육감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카운티 공교육 시스템의 얼굴인 교육감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아시안 학생들이 시험 준비에 매달린다는 비판이 돌고 있는 와중인데 교육감은 불이 난 집에 휘발유를 부어버린 셈이었다.
우선 학생들의 시험 준비 비용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된 공식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감이 던지는 말 한 마디의 파장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다. 아시안 학생들 모두를 싸잡아 한 말로 인식될 수 있다. 물론 시험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은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설사 많은 비용을 들여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해도 그 것을 비난할 순 없는 일이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 누구도 주어진 룰 안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경주하는 합법적 노력을 비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자녀교육에 있어서 많은 비용을 들이는 건 비단 입학시험 하나만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자녀들의 운동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도 종종 본다. 고등학교에서 농구선수가 되기 원하는 학생들 가운데 AAU 팀 등의 수준 높은 농구 팀에서 일년에 수천불씩 들여가며 운동 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지 않나. 테니스, 골프, 수영 등에서도 잘 하려고 특별 코칭을 받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음악, 미술, 무용 레슨은 또 어떤가. 또한 가정교사도 두고 학원에 보내기도 한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비난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는 인정을 안 할 것인가. 아니면 TJ 입학 아시안 학생들이 좀 더 시험 준비에 공을 들인다고 하니 이 시험 준비에 대한 노력만 따로 떼어 놓고 비난하는 것인가.
아시안 가정들에 대한 비판과 질투의 시각은 이민 자체로 옮겨지기도 한다. 아시안들 가운데 TJ 입학을 목표로 이민을 오고 페어팩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아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을 어떻게 잘 못 되었다고 할 수 있나. 자녀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한 가정이 내리는 결정은 쉬운 게 아니다. 그런 어려운 결정이 이민과 페어팩스 거주로 연결된다고 비난할 순 없다.
지난 9월 26일에 인근 라우든 카운티의 교육위원회가 이번 논의안에 반대 의사 표시 서한을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로 보냈다. 그 편지에서 특히 나의 주의를 끌었던 것은 변경안 내용 중 반대하는 조항들 뿐 아니라, 북버지니아 지역의 Governor’s School (주지사 학교) 인 TJ의 관할을 이제는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에만 남겨둘 게 아니라, TJ에 학생들을 보내는 모든 학군들이 같이 참여하는 운영보드를 구성 할 때가 되었다는 지적이었다. 어쩌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금까지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가지고 있던 TJ에 대한 단독 운영권을 잃어버릴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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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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