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는 진단을 할 때 언제나 우리 몸 전체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고 한 명의 의사가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현대 의학은 우리 몸을 여러개의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각 분야에 대한 전문의가 각각 따로 분석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동일한 대상을 연구하면서도, 인체에 대해 이렇게 서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는 두 학문사이의 이 태도적, 관점적 차이는 실제 임상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결과의 차이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는 간에 아무 이상이 없다 했는데 한의원에서는 간이 좋지 않다고 한다거나, 병원에서는 분명 코에 문제가 있다 했는데 한의원에서는 코가 아닌 폐의 문제라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한의원과 병원에서 동일한 병증에 대해 서로 전혀 다른 진단을 내리니 환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의학은 실제적인 구조보다는 기능을 중시한다
사실 한의학의 관점을 취해 인체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본다면, 그 안에 담긴 세밀한 구조적 차이는 크게 중요해지지 않는다. 현대의학에서는 분명이 다른 장기인 ‘부신’과 신장’을 묶어서 그냥 ‘신장’이라고 부르고, ‘비장’과 ‘위장’도 묶어서 ‘비위’라고 부르면서 함께 치료하는… 어찌보면 현대의학에 비교해 좀 덜 다듬어지고 투박해 보이는 한의학의 ‘해부학’이론은 바로 이러한 관점적 차이에 기인한다.
비장과 위장은 분명 구조적으로는 서로 독립된 장기지만, 기능면에서는 음식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한가지 기능을 협업해 처리하는 하나의 조직체이다. 그래서 임상적으로도 위장에 문제가 생기면 이는 반드시 비장에도 부담을 주고, 비장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위장에 부담을 주어 결국에는 위장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비장에 주로 문제가 생긴 환자를 치료하는 법과 위장에 주로 문제가 생긴 환자를 치료하는 법이 결국에는 거의 같아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비장’과 ‘위장’을 묶어서 아예 ‘비위’라고 부르면서 함께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몸 안의 장기를 구분하고 분류하는 기준은 구조가 아닌 기능
이렇게 현대의학과 구분되는 한의학만의 독특한 해부학 이론을 ‘장부론’이라 하는데, 이 장부론이 현대의학의 해부학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각 장기를 구분하고 분류하는 기준이 장부의 ‘구조’가 아닌 ‘기능’에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현대의학은 ‘폐장’ ‘비장’간장’ ‘심장’ ‘신장’ 과 같은 장기의 구분을 각 장기의 해부학적, 공간적인 위치를 기준으로 나누는데, 동일한 공간안에 물리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조직들이 있으면 이를 하나의 장기로 분류, 혹은 연관 장기로 분류하는 식이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해부학적 위치보다는 각 인체의 조직들이 함께 공유하는 생리기능을 더욱 중시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호흡을 하기 위해 ‘폐’라는 장기 이외에도, ‘코’와 ‘피부’, ‘기도’라는 조직들을 다 함께 사용한다.
그렇기에 코, 피부, 기도, 폐와 같은 각각의 조직이 비록 다른 공간에 각자 존재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이들을 통째로 묶어 ‘폐장’이라는 하나의 장기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에서는 피부병, 감기, 비염, 기관지 확장증 같은 서로 다른 병들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뿌리가 다 같은 ‘폐병’의 범주에 놓고 함께 보며 치료와 진단을 진행한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는 콧병과 피부병 같이 환부가 다른 질병들을 함께 묶어서 진단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오히려 해부학적으로 그 위치가 서로 가까운 귀병와 콧병을 한데 묶어 ‘이비인후과’의 범주에 놓고 살펴본다. 물론, 한의학에서 호흡과 관련된 기능을 하는 코와 듣는 것과 관련된 기능을 하는 귀를 함께 보는 일 역시 거의 없다.
아무리 구조가 멀쩡해도 기능을 못하면 한의학에서는 병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에 생기는 병인 축농증으로 한의원을 찾으면 이는 폐와 관련된 병이니 폐를 치료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같은 병으로 병원을 찾으면 이는 코와 관련된 병이니 코와 그 주변의 조직을 치료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구조가 멀쩡해도 기능을 못하면 한의학에서는 병이 되고, 아무리 그 기능에는 문제가 없어도 그 구조에 문제가 있으면 현대의학에서는 병이 되는 지금의 상황은 이 두 의학 시스템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패러다임의 차이가 불러온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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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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