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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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브리지 제리 약력
△1744년 7월 17일 매사추세츠 마블헤드 출생 △1762년 하버드대 졸업
△1772-73년 매사추세츠 의회 대의원 △1774-75년 지역 의회 대의원 Provincial Congress
△1776-80년 대륙회의 대의원 △1786년 매사추세츠 의회 대의원
△1787년 제헌의회 대의원 △1789-93년 합중국 하원의원
△1797-98년 프랑스 특사 △1810-1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1813-14년 합중국 부통령 △1814년 11월 23일 워싱턴 D.C.에서 영면
독립선언서와 연합헌장에 서명했으나 합중국 헌법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던 애국파 엘브리지 제리는 ‘매춘부같은 대영제국 정부’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나 ‘과도한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염려했다. 제리는 (헌법에) 제안된 권력 분립 또는 권리장전의 누락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제헌회의에서 헌법에 서명을 거부했다. 그는 인민과 인민의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은 부도덕한 정치인들에 의하여 너무나 쉽게 휘둘리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이 완전히 일관적인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권력에 목말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폭정의 개연성을 두려워했다.
1770년대 초부터 애국파의 대의에 투신했던 제리는 매사추세츠 통신위원회와 초대 지역의회(Provincial Congress)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의회의 안전위원회 일원으로서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 하루 전 영국군에 의해서 체포될 뻔했다. 대륙회의에서 그는 큰 주나 작은 주 모두에게 동등한 대표권을 보장하는 연합헌장을 지지했다.
제리는 자신의 지역구를 대표하여 합중국 초대 하원의원을 지냈으나 두 번째 출마는 고사했다. 대신 또 다른 임무로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프랑스 혁명정부와의 관계개선을 위하여 1797년 애덤스 대통령이 존 마샬과 찰스 핑크니(Charles Cotesworth Pinckney)와 함께 그를 프랑스 파견 사절로 낙점했던 것이다.
그런데 X, Y, Z라고 알려진 익명의 프랑스 측 관료들이 사절단에게 뇌물을 요구했고, 이에 굴욕을 느낀 마샬과 핑크니는 즉각 귀국했다. 제리는 남아서 텔리어랑(Talleyrand)과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텔리어랑은 미국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음으로써 제리를 이용했을 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귀국하여 제리는 자신이 프랑스와 미국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매사추세츠 주지사 재직 중이던 1812년 제리는 자신이 소속된 민주-공화당에게 유리하도록 독특한 모양의 선거구 재획정을 승인했다. 그 가운데 특히 심했던 어느 지역구는 도롱뇽(salamander)과 흡사한 형태였는데, 어느 만화가가 그것을 동물로 묘사하여 ‘제리맨더Gerrymander)’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이름은 미국의 정치 용어 중 하나로 굳어졌다.
제리는 매디슨이 1812년 두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현직에서 돌연 순직했다. 그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1787년에 그가 헌법에 반대하여 서명하기를 거부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던 부통령, 즉 상원의장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의사당으로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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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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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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