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의 일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한 생을 마감하고 떠나면 그 순간부터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남게 된다. 주인공이 엮어낸 스토리를 함께 써 내려왔던 공연자들의 회억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라는 진리가 서럽다.
올해 따라 유난히도 날씨가 지겹고 무더웠다. 드물게도 청명한 하늘, 신선한 바람이 뜰 앞에 내려와 앉던 지난 12일, 강철은 동지가 운명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와 만나 술 한잔 하고 속 이야기 나누고 차편 제공 받았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한 주일이 다 갔어도 그가 정말 세상을 떠난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람이 곁을 떠나면 추억의 대상이 되게 마련인가. 20여 년 전, 서울에서 내가 회장으로 있던 ‘한국서민연합회’ 야외 교양강좌 행사장에 강철은 씨를 초청한 적이 있다. 행사 후 여흥시간에 강철은 씨가 불렀던 노래가 ‘메기의 추억’이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오래 전 그와의 한 장면이지만 새삼스레 그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보낸 사람으로서의 아쉬움 때문인가.
그를 처음 만난 건 1978년경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강철은 씨를 만나 전격적으로 워싱턴 한인회장 출마를 권유했다. 그는 깜짝 놀라 “저는 미국에 온 지도 얼마 안 됐고 나이도 젊고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워싱턴 지역 한인사회는 당시 반 유신독재 열기가 대단했던 때였다.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동지들과 함께 이끌었던 내가 계획한 것은 젊은 층을 수혈하여 세대교체를 하자는 것이었다.
사업인 송제경 씨의 통 큰 양보로 부회장 러닝메이트를 수락해 계획대로 잘 진행됐다. 송제경 씨의 득표 능력도 큰 공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강철은 씨는 36세 나이로 워싱턴 역사상 최연소 한인회장으로 탄생하게 되었으니 그 자신의 말대로 내 일생에 정·송 두 선배와의 인연은 의미 있는 ‘계기’였을 것이다.
강철은 회장은 전두환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당연직처럼 관습화 돼 오던 대통령 방미환영 준비위원장직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회장 출마 조건으로 “어떤 경우에도 결코 친정부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확실히 지켜 민주회복 운동세력과의 신뢰를 더욱 두텁게 하였다.
강철은 씨의 행동반경은 매우 넓었다. 남북문제에 관한 관심도 많았다. 북한 식량 돕기 운동의 일환으로 아들 웅을 데리고 몇 차례 북한을 방문해 라면공장 설립을 시도했고 남북 6.15공동선언실천위 미국 측 대표로 신필영, 송제경, 김응태 씨 등과 활동하기도 했다. 일본 조총련계가 주최한 6.15 선언 회의장에서 강철은 씨는 “평양에만 집중하지 말고 서울에도 공평하게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여 조총련 관계자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험악한 분위기 속에 도중하차해 귀가해 버린 해프닝도 기억에 남는다. 강철은 씨는 나와 한 번도 정치조직이나 한인사회 단체 활동에 소속을 같이 해 본 일은 없지만 우연히도 피차간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사전 사후 교신이 있어 왔다.
강철은 씨는 국내 진출 의욕도 많았다. 이기택, 박찬종 등 거물급들의 참모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수성, 조순, 김윤환, 김상현 씨 등이 출범시킨 ‘민국당’ 대변인을 지내며 전국구 13번을 배정받은 일도 있다. 강철은 씨의 정치지론은 현재 청와대 수석 비서관 중심의 정치 독재화를 방지하고 각 부처 장관 중심의 책임 정치를 구현하자는 것, 그리고 중앙당 독선의 정당정치 형태에서 중앙당을 없애고 각 지구당 중심제로 가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 완강한 그의 지론이었다.
세상은 강철은 씨처럼 순진무구한 진정성을 받아들였는가. 덧붙일 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는 ‘한반도 포럼’을 발족시켜 통일문제 토론모임을 활성화하려 했다. 강철은 씨는 선후배와의 관계에 정 많고 의리 깊은 인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의롭고 열정적이며 잔재주를 모르며 정직한 신앙심 깊은 인간이었다. 그가 떠난 빈자리가 갑자기 크게 느껴진다.
강철은 씨의 부인 강(김)연진 여사는 대학시절 만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성을 다 바쳐 헌신해 온 그 덕성이 새삼 돋보인다. 존경스럽다. 그의 며느리 은양(아들 웅, 목사)은 미 최대 TV 채널 NBC의 뉴스 캐스터다. 강철은 씨는 평소 며느리 자랑을 자제해 왔다. 차남 혁(컴퓨터 전문가), 딸 낸시(변호사) 모두 소문난 효자 효녀다.
재삼 여러 동지들과 함께 강철은 동지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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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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