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15마일쯤 떨어진 곳에 티부론(Tiburon)이라는 곳이 있는데 J라는 친구가 살고 있다. 그의 저택 정원에는 야외 바베큐 테이블이 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높은 빌딩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림처럼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첫사랑의 여인 S를 만났을 때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J가 이 저택을 구입한 것은 10여년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가 발생하여 한국의 IMF때처럼 부동산 가격이 반토막 나자 페이먼트을 감당키 어려웠던 많은 사람들이 정든 집을 버리고 떠나야했던 시기였고, 800만 달러짜리 집을 500만 달러에 구입했다고 한다.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갔던 일이 있었다. 자동차로 산기슭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영화나 그림엽서에서 본듯한 성(Castle)같은 집이 보였다. 넓은 정원은 잘 가꾸어져 있었고 차를 세우기 위해 본채 뒤로 돌아가니 손님들이 오면 머무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만해도 방이 5개나 되어 일반인들의 집보다 커 보였다. 본채 안으로 들어가니 내가 지금까지 본 개인 저택으로는 가장 큰 집이었다.
안주인은 음식 솜씨가 좋았다. 유럽 어느 백작집 식당에 온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잘 꾸며진 넓은 식당에서 고급 요리들로 근사한 식사를 마치고 집 구경을 했다. 방이 몇개인지 어떤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와인 저장고 였는데 와인이 전문 판매점보다 더 잘 저장되어 있었으며 옆으로는 즐길 수 있는 바(Bar)가 있었고, 다음으로는 30명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영화관이 있었다. 조명 시설은 물론, 최고급 오디오까지 갖춰져 있었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에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이란 곳이 있는데 여기서 본 대단한 가정식 극장을 연상케 하였다.
얼마 후 다시 한번 J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의 집은 볼수록 더욱 웅장하고 귀족적 품격을 갖추고 있었으며 진정한 부의 상징처럼 보였다. 자칭 공연예술 마니아인 나는 무척이나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J에게 부탁을 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면 와인바에 앉아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와인 한잔하고 멋진 영화도 한편 감상하자! J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세월은 무심히도 흘러 10여년이 지났고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J가 말했다. 이젠 아이들도 모두 장성하여 집을 떠났고 나이가 들어 2,3층과 지하를 다니기도 힘들어 조그만 단층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500만달러에 구입한 집을 10년 동안 살고 다시 700만달러에 팔려고 내놓았다니 10년을 살고도 1년에 20만달러씩을 벌어들인 게 아닌가? 빈익빈 부익부란 말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평생을 모아도 불가능한 돈이었다. 할말이 없었다.
나는 “팔리기 전에 약속한대로 그 집에서 우아하게 와인 한잔하고 극장에 앉아 좋아하는 영화 한편 보고싶었는데...” J가 말했다. “나도 아직까지 거기 앉아 한번도 와인 마시고 영화를 본적이 없다네...” J와 헤어진 후 또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J 자신도 그 극장에서 영화를 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큰집이 필요했던 것일까? 30년쯤 전 처음 이민 왔을 때 리커스토어를 하는 어느 이웃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 오면서 벤츠S500을 차고에 세워 두고 멀지도 않은 교회 갈 때 일주일에 겨우 한번 타는 걸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한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돈을 숭배하며 살아간다. 오죽하면 “돈의 종교”라는 말이 있을까?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돈도 성스러운 돈, 더러운 돈, 깨끗한 돈이 있다. 인간에게 돈이란 무조건 많으면 행복한 것일까? 돈 보따리 들고 요양원 가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며, 경노당 가서 학력 자랑해 봐야 누가 알아주며, 병원 가서 특실 입원해 독방에서 지낸다 한들 여러명이 함께 쓰고 서로 대화하는 일반병실 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어느 유명한 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돈 많은 사람 곁에는 따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돈 냄새를 맡고 모여든 사람들일 뿐, 가족을 포함한 모두의 속내는 그 부자가 언제 죽나...라고 부자의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뿐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아야 하고 지갑은 열어야 하는 이유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산다는 것>에서 인간의 삶을 3단계로 분류했다. 첫째 단계는 먹고 살아야하는 생리적 욕구(To live), 둘째 단계는 재산이나 지위, 명예 등을 추구하는 소유 욕구(To have), 세번째 단계는 정신적 가치를 존중하는 가운데서 기쁨을 누리고자하는 존재 욕구(To be)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이타적 인생을 살다간 사람은 인류의 5%이내라고 하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부자들 가운데서도 이 정신적 가치를 삶의 우위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한다. 점점 살기가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웃들의 목소리에 한번쯤 귀 기울여 봄직한 요즈음 부(富)와 성공(成功)은 소유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인생 철학(哲學), 나눔의 미학(美學)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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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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