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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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디킨슨 약력
△1732 11월 8일 메릴랜드 탤봇 카운티 출생 △1753-57 영국에서 법학 공부
△1760-65 델라웨어·펜실베이니아 입법부 의원 △1765 인지세법 회의 대의원 △ 1770-76 펜실베이니아 입법부 의원
△1774-76 대륙회의 대의원 △1776-78 민병대 준장 △1779-80 연합회의 대의원 △1781-82 델라웨어 최고행정관
△1782-88 펜실베이니아 최고행정관 △1783 디킨슨 대학 창립자 △1786 애나폴리스 회의 의장
△1787 제헌의회 대의원 △1808 2월 14일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영면
존 디킨슨은 ‘혁명의 논객’으로서 이 기간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수많은 문서를 집필했다. 인지세법 회의에서 발표했던 『권리선언 Declaration of Rights』 (1765)으로부터 연합헌장 (the Article of Confederation, 1776), 그리고 『파비우스의 편지 (Letters of Fabius)』에 이르는 그의 저술은 합중국 헌법을 최초로 비준했던 두 개의 주 -델라웨어와 펜실베이니아- 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디킨슨은 법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연구하기 위하여 영국의 법체계에 몰두했고, 그래서 그의 1776년 이전 저작들은 권력의 남용을 시정하고 식민지들과 영국의 연합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씌여졌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펜실베이니아 농부의 편지 Letters from a Farmer in Pennsylvania』 (1768)이다. 이 책에서 그는 타운센드법을 비판하였고, 식민지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읽혔다. 『상소문 Petition to the King』 (1774)은 충성의 맹약을 전제한 불만의 진술이자 정의의 호소로서, 대륙회의에서도 채택되었다. 그리고 『무장의 명분과 필요성의 선언 Declaration of the Causes and Necessity of Taking up Arms』 (1775) 역시 대륙회의에서 채택되었는데, 이 선언은 “우리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하여” 식민지의 무기의 사용을 옹호하며, 식민지인들은 애당초 영국인으로서 갖고 있던 자신들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대륙회의에서 디킨슨은 독립선언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것이 선포된 후 그는 그 대의를 지지했으며 연합헌장 초안을 준비했다.
40이 넘었지만 디킨슨은 민병대에 입대했고 뉴저지와 펜실베이니아에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1779년 의회로 돌아왔고 때 맞춰 연합헌장에 서명했다. 델라웨어와 펜실베이니아는 한 명의 영주(proprietor) 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이 두 식민지에서 겸직할 수 있었고 1780년대에는 디킨슨이 초대 델라웨어 최고행정관(President)이었으며 현직 펜실베이니아 최고행정관으로 재임 중이었다. 1786년까지 디킨슨은 연합정부의 단점을 잘 알게 되었으며, 애나폴리스 회의 의장이었던 그는 다음해에 있을 제헌회의를 계획하는 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디킨슨은 제헌회의에서 조정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안정적인 중앙정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그는 인구비례대표(하원)와 동수대표(상원)로 이루어진 두 개의 원으로 구성된 입법부를 지지하여 코네티컷의 로저 셔먼에게 힘을 보탰다.
큰 주와 작은 주 사이의 교착을 풀어준 대타협이었다.
헌법안이 각 주로 송달된 후 디킨슨은 ‘파비우스(Fabius)’라고 서명된 일련의 편지를 출간하였다. 그것은 헌법을 설명하고 지지하는 글이었으며 델라웨어와 펜실베이니아에서 1787년 12월 (식민지 가운데) 최초의 비준을 받는 데 기여했다. 이 논객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그리고 토마스 제퍼슨은 그를 “혁명에 있어서 위대한 지존 가운데 한 분”이라고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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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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