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회가 너무 혼란의 연속이다. 역대급 막장 드라마가 매일같이 연출되고 있다. BC 8세기에서 BC 3세기,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각 나라마다 학자들이 주장을 들고 나와 논쟁을 벌이는 이론광풍이 요란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일견명(一犬鳴), 백가쟁명(百家爭鳴)’ 풍자가 유래되었다. “개 한 마리가 뭔가를 보고 짖어대니 온 마을의 개들이 덩달아 영문도 모르고 따라 짖어댄다”라는 말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학자들이 나름대로 철학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순수성 짙은 풍조가 있었다.
오늘의 대한민국, 운영지표가 보이질 않는다. 나라를 누가 무슨 철학으로 어떻게 어디로 이끌고 가는 건지 문자 그대로 깜깜이 진행이다. 남북이 제각각 사상논쟁으로 서로 물고 찢고 짓밟고 죽이는 비극이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 한민족에게 정녕 슬기와 지혜와 관용과 아량이 없단 말인가.
지난달 타계한 백선엽 장군 장례절차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고 백 장군은 우리 국군 창설 공로자이자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한 전쟁영웅이다. 현충원에 그의 묘 자리 몇 평마저 안 된다고 펄펄 뛰는 옹졸하고 인색함에 비애가 느껴진다.
그가 26세 젊은 나이에 일본군 중위로 만주 토벌군 소속으로 복무했었던 사실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행적이다. 그러나 그는 고국에 돌아와 평생 동안 헌신하고 크게 공적을 세우기도 했다.
그가 일제시대 고위관직에 앉아 이완용 등 을사오적처럼 나라를 팔아먹은 큰 역적질을 했다면 용서할 틈새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한 사람 빼놓고 창씨개명 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었나. 이제 와서 백 장군의 공적은 다 지워버리고 한 자락 오류만을 들고 나와 징벌하려는 주장은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주언라이(주은래), 장제스(장개석) 총통도 일본 육사 출신이다. 두 개의 일본 이름까지 가졌던 박정희(다카키 마사오, 오카모토 미노루)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 김일성도 스탈린의 총애를 받던 소련군 대위 출신이다. 한국군 창설 공로자들, 이형근(군번 1번), 송요찬, 김석원 등 뚜렷한 장성들이 일본국 출신임을 어쩌랴.
성경책에도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있다. 물론 홍범도, 김좌진, 김원봉 같은 불멸의 애국자들을 더더욱 기리고 추모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이 패망하고 한 세기가 지나간 이 마당에 ‘과’만 물고 늘어져 ‘공’을 밟아버리려는 편견 또한 버려야 할 것이다.
남아공의 백인정부에서 27년간 옥살이를 하고 대통령이 된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첫 연설은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 그러나 잊지는 않을 것이다”였다. 지나간 역사를 대하는 우리들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명언이다.
고 백 장군의 서거에 미 국무성에서 애도 성명을 내고 미 군부 지도자들이 그의 공적을 치하하며 조문한 것을 두고 ‘한국 광복회’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내정간섭 말라”는 항의서한을 보냈다던데 참으로 기가 막힌다.
아까운 인재들을 버리고 이렇게까지 악을 쓰고 단세포적인 사고로 과거를 규탄하려면 우리 삼국시대 이후 당, 송, 원, 명, 청에 빌붙어 아부하던 사대주의자들 모두를 부관참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릇 국가라면 청탁불문 모든 국민을 끌어안고 가는 게 마땅한 도리다. 일시적 반역을 이유로 영구 응징을 논하는 것은 오히려 민족분열 사고로 지적받을 수도 있다. 이순신도, 영국의 넬슨도,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심지어 독일 나치의 롬멜은 국적과 관계없이 지금도 칭송받고 있다. 이것이 어찌 내정간섭이란 말인가.
전 민정당 대표 윤길중은 21세에 일제 사법행정 양과에 합격하고 전남 무안 군수로 부임한 후 식민공출 정책에 항거, 조선농민 보호에 공을 세웠다.
그의 공덕비는 지금도 현지에 보존돼 있다. 일본지배 아래 관리를 지냈다고 해서 모두 친일파로 매도하지는 말아야 한다. 모두가 자기 영역에서 저항정신과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갈피 잡을 수 없는 보수 진보 이념논쟁, 다수의 횡포와 홍위병식 세몰이, 독립이 보장돼야 할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에 대한 뭇매 작태에 검사장급들이 활극까지 빚어내는 지경이다. 거슬러 보면 치졸한 세력다툼이다. 양보와 단결의 진리만 깨달으면 중도노선의 진리가 보일 것이다.
한참 철 지난 보수니 진보니 하는 흘러간 옛 노래 틀고 앉아 뒷걸음질 치지 말고 다같이 힘 합쳐 중도노선으로 힘차게 달려야 한다.
너무 뒤를 돌아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현대 세계는 정의냐, 불의냐, 손해냐, 이익이냐의 실존주의를 추구한다. 사상논쟁은 후진적 작태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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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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