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중단된 지 오래다. 남북 간의 대화도 없다. 북한은 계속해서 핵분열 물질을 생산하고 핵탄두와 미사일 체계의 성능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제재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결상태가 언제까지 갈지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아는 일은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제재와 코로나19 전염병으로 경제사정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략 무기고를 확대시키고, 기술적 개선을 계속하고 있다. 핵탄두의 소형화, 장거리 전달체계의 진전,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개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난 10월 스웨덴에서 북미실무자 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미국이 계산법을 바꾸지 않는 한, “새로운 길”을 택하고 “제재를 정면 돌파하면서 전략적 억제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여러 번 다짐했다.
이와 같은 북한의 지속적인 무력증강계획은 7월 18일에 개최된 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기 위한 토의”를 통해서 재확인되었다. 서울의 일부는 북한이 “핵전쟁 억제력” 대신, “전쟁 억제력”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핵개발에 대한 태도의 완화를 시사하는 뜻이라고 조급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변화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북한은 과거에도 두 가지 용어를 번갈아 사용한 적이 있다.
이제 북한은 협상재개의 조건으로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모든 제재의 해제, 안전보장,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이다. 이런 문제들은 북미 간에 지난 사반세기 동안 협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본 그 어떤 협상노력과 접근방법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이룩하는데 모두 실패했다.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단계적 상호행동의 비핵화 방법의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먼저 비핵화를 하면 “북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한다. 그 말을 누가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방적인 미국식 접근법으로는 절대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동안, 북미대화 촉진을 위한 한국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의 효력은 2018년 봄과는 다르다. 이제는 최소한도 미국과 북한 둘 중에 하나가 귀를 기울여 줘야 한다. 현재 악화된 남북관계로 봐서 북쪽은 남쪽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맹인 미국을 상대로 미국이 진취적인 신축성을 보이도록 설득해 보는 수 밖에 없다.
한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합의를 토대로, 새로운 창의적 접근방법은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한 예로 미국이 취소 가능한 “Reversible Snapback”의 부분적 제재해제를 전제로 일정한 북핵 시설의 해체와 북핵 활동의 전면 동결을 협상할 수 있다. 스몰 딜(Small Deal)이나 빅 딜(Big Deal)이 아닌 중간규모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어려우면 보다 작은 규모의 타결도 진전의 시작이 될 수 있도록 협상을 넓혀가야 한다.
또 한편, 동맹인 한미 양국이 8월로 예정된 연합훈련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한 것이 북한이 대화에 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연합훈련을 11월 이후로 연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을지 모른다. 훈련의 연기로 인해 전시작전권의 전환 조건인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에 지연을 초래하더라도, 시급한 긴장완화와 북미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한국이 이를 감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미협상 재개를 위해서 미국이 다시 고려할 수 있는 제안은 여러 개 있다. 이중에는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 민간 교류 장려 등이 포함된다. 특히 종전 선언은 평화체제 논의의 입구가 될 수 있다. 평화체제의 논의는 비핵화 협상과 병행해서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회의 비준을 받을 수 있는 평화조약의 수준이 되려면, 비핵화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또 한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을 말하는 ‘October surprise’는 생길 가능성이 희박하다. 트럼프가 선거를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을 북한이 장기 전략상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도발을 의미하는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의 배달 가능성도 희박하다.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중지선언을 더 이상 준수한 의무를 느끼지 않다고 했지만, 얼마 전 김여정 부부장은 북미정상 간의 관계가 좋기 때문에 미국이 덕을 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끝으로,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대화의 정체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된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이 걸린다. 전쟁은 할 수 없다. 지금도 대화와 협상만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용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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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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