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펜데믹이 우리에게 준 피해야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번 주 초 내가 이용하는 세탁소에 갔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세탁물을 갖고 갔더니 주인이 언제 필요하냐고 물었다. 아무 때나 괜찮다고 하자 2주 후에나 찾으러 오란다. 공장임에도 불구하고 세탁기계를 안 돌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마 세탁을 다른 공장에서 해다가 갖다 주는 모양이었다. 재택 근무하거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 세탁물이 줄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칼럼 제목 끝에 ‘선물’ 이라는 단어를 붙였으니 도대체 무슨 얘기냐고 의아해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팬데믹이 나에게 가져다 준 선물도 분명히 몇 가지는 있다. 우선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을 오랫동안 직접 대면해서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회적 동물이 분명한 우리들에게 요구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는 게 쉽진 않았지만, 벌써 여러 달 동안 비사회적 생활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능력은 이럴 땐 초인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덕분에 소셜 미디어도 더 많이 하고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 시력이 나빠지는 것도 같이 느끼지만 말이다.
그리고 연로하신 나의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의지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목격했다. 나이가 80대 후반인 아버지가 평소에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거나 “몸이 좀 불편한 데 이제 다 살았나 보다” 하실 때 마다 사실 듣기 싫었다. 그 때마다 나는 말대꾸 비슷하게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하는 주위 어른들의 이야기들을 꺼내곤 했다. 그리고 요즈음은 100세는 기본이라고까지 덧붙이곤 했다. 자식으로 그런 소리를 듣기 불편해 하는 것은 분명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몇 달째 두문불출이다. 나 보고 집으로 찾아 오지도 말라고 하신다. 물론 집 안에 발 한 번 못 들여 놓았다. 다 살았으니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던 분의 모습은 절대로 아니다.
또 하나 나에게 주어진 선물은 집에 TV나 인터넷이 없어도 스마트 폰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는 거다. 몇 달 전 20여 년 동안 집 전화와 TV 그리고 인터넷 이렇게 세 개를 패키지로 묶어 받아 온 서비스 비용이 계속 인상 되어 다른 회사로 서비스를 옮겨 보기로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거의 쓰지 않았던 집 전화도 아예 끊었다. 그래서 먼저 기존 서비스를 정지시키고 다른 회사에 연락해 서비스를 신청했다. 가격이 훨씬 저렴해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인터넷 연결과 TV 셋업을 위해 집을 방문해야 할 테크니션이 바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이유였다. 그러면서 임의로 받은 서비스 날짜가 11월 30일이었다. 물론 그 전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처음에 그 날짜를 받았을 땐 정말 아찔했다.
덕분에 약 두 달 이상을 집에 인터넷과 TV 없이 지냈다. 그리고 없으니까 없는 대로 살 수도 있음을 체득했다. TV 서비스가 돌아온 요즈음도 사실 TV를 별로 안 본다. 그래서 아예 TV 서비스를 취소해 볼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둘째 애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안부 전화이다. 큰 애 보다 좀 더 다정다감한 둘째는 시애틀에 산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아버지가 잘 있는지 확인하느라 주말 저녁에 한 번씩 꼭 화상전화를 한다. 그리고 대화는 안부를 묻는 것을 넘어 깊은 얘기를 포함한다.
머리가 다 큰 아들하고도 이런 대화를 갖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매주 전화가 기다려진다. 통화 시간도 한 시간 이상 씩이다. 두 주 전 주말 대화 때에는 둘째가 나에게 물었다. 앞으로 20년 간의 나의 계획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 나이 60대 초이니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머지 기간인 2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싶느냐는 이 도전적인 질문에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래서 조만간에 아버지다운 멋진 대답을 해 주어야겠다고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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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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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사는게아니라 버티는겁니다. 이러고평생살아도되나보네요? 선물이아닙니다. 착각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