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월19일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는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일명 남북 협상)라는 길고도 긴 이름의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의 목적은 5월로 예정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를 반대하고 민주적 방식에 의한 통일 정부 수립에 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김일성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남쪽에서는 41개, 북한에서는 15개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 690여명이 참석한 이 회의는 한반도의 분단을 막자는 각계각층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지만 회의 시작 전부터 북측에 이용만 당하고 말 것이란 우려가 컸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두쪽이 날 것을 우려한 김구는 평양행을 고집했고 수백명이 집 앞으로 몰려와 방북을 반대하자 포기하는 척하다 담을 넘어 방북을 감행했다. 남북 협상은 예상대로 김일성의 위상을 높이는 홍보행사로 끝나고 뒤늦게 자신이 이용당한 것을 깨달은 김구는 김일성이 2차 협상을 제의해왔을 때 깨끗이 거절한다.
김일성은 애초부터 민주 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구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반도 통일은 무력으로밖에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놓고 1945년 북한에 들어온 직후부터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반면 남한은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 같은 인물이 전쟁이 나면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는 말로 허풍만 잔뜩 치면서 실제로 준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이런 호전적인 말에 놀란 미국이 중장비 대부분을 압수하는 바람에 사실상 무장 해제된 상태였다.
그 결과 6.25 직전 남북한 군사력은 비교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북한은 잘 훈련된 군사 20만, 남한은 그 절반 이하로 수적으로도 큰 차이가 난데다가 북한은 당시 최강인 소련제 T 34등 탱크 240여대, 야크 등 전투기와 폭격기 200여대로 무장하고 있었던 반면 남한은 탱크는 한 대도 없고 비행기도 연락기와 훈련기 20여대가 고작이었다. 6.25가 발발하고 나서야 조종사 몇 명이 일본으로 건너가 훈련을 받고 전투에 투입됐다.
이런 형편에서 한국군은 북한의 대대적인 공세가 예상된다는 첩보마저 무시하고 6월25일 하루 전까지 장병에게 휴가를 주는 등 여유를 부렸다. 거기다 북한은 6월23일 북한 간첩과 조만식을 교환하는 협상을 하자며 위장 평화 공세를 펼쳐 남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무디게 했다. 전쟁 발발 3일만에 서울이 점령당한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6.25는 한국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었지만 나름 소득도 있었다. 그 때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를 3개월의 인공 치하가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6.25 이후 한국민의 절대 다수가 공산주의에 반대하게 된 것은 6.25의 덕이다.
그 후 70년이 지난 지금 이를 경험한 세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에 대해 희미한 기억밖에 없는 세대가 한국 사회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지난 20년간 한국 고등학생들은 한국사를 배우지 못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한국사 시험을 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북한은 역사적인 4.27 합의의 상징인 개성의 연락사무소를 산산조각으로 날려버렸다. 이와 함께 판문점 보도 다리와 평양, 백두산을 오가며 평화롭고 번영하는 남북한을 만들자던 약속도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북한은 “김정은 대변자”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해온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연일 내뱉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비판자들의 단골 메뉴가 남북 관계 파탄이었다. 이보다 더 남북 관계가 파탄날 수는 없다.
최근의 사태는 충격적이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지상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백두 혈통인 김씨 일가의 영구 집권이다. 이라크와 리비아의 예를 본 그들은 이를 위해 핵무기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이를 일부 폐기하는 척하면서 제재를 풀어야 하는데 이것이 여의치 않자 애꿎은 한국과 문재인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이를 반복하는 벌을 받는다”는 산타야나의 경구는 아직도 유효하다. 6.25 발발 70주년을 맞아 한국 국민과 지도자들이 북한의 실상을 바로 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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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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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논설위원이라니 개탄스럽다. 그래서 어쩌겠다는것인가?
정은이와그당.재산보호라.그들이그런무리수를왜?미텻냐?니같으면문씨와한국정당들.목숨봐줄께통일하자하면하긋냐?별 또 라이를보긋네
미드.항상북한두둔.항상중국두둔.항상북한편중국편인문씨두둔.너 정체가모냐.딱보니종북좌파에.짜개넘이미국에어케왓냐.아니면시진핑이시키던?댓글당 돈받고
u.s.a 야. 왜 그렇게 생각이 짦으냐? 남북통일 되기전에 물론 북한의 조건이 있겠지. 예를 들면 김정은이를 비롯 모든 공산당 간부들은 전에 일로 형사처리 면제특권이 주어지겠지. 정은이의 재산도 보호 받겠지? 이런 조건없이 북한이 미쳤다고 평화통일 하겠냐? 머리를 써. 안그럼 그 나이에 치매걸린다.
평화적흡수통일이 됬다고치자.한국식으로.그럼 투표에의해.정치인뽑겠지?김왕국은 무사할까?그냥폭망이고.잘못하면단두데다.니같으면 하긋냐?그래서미국에체재보장해달라는거다.근데이거조차말이안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