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은 아버지의 날이다. 팝 음악 중 아버지를 주제로 노래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필자는 폴 앵커(Paul Anka)가 1974년에 발표한 ‘Papa’를 추천해 본다. 평생 가족을 돌보기 위해 살아온 아버지의 얘기를 담은 의미 깊은 내용의 노래이다. 한평생 오직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외로이 외로움을 감내하며 아들에게 아버지 걱정하지 말고 혼자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보라고 권한다. 이에 집을 떠난 아들은 혼자 살아가며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에게 자신이 아버지로 받은 그대로 반복하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아버지는 매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 덕택으로 난 잘 먹고 잘 지냈다. 매일 밤 나를 침대에 데리고 가 이불 자리를 덮어 주었으며 나를 위한 기도가 끝난 후 이마에 입 맞추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긴 세월 동안 눈물과 슬픔을 함께한 우리들 가족. 우리들은 강인했다. 지나간 세월들을 매우 힘들었지만 아버지는 모두 잘 이겨내고 잘 버티었다. 그 뒤엔 어머니가 항상 함께 했었다. 그래서 난 그들 덕택으로 힘든 일 없이 살아왔다. 세월은 흘러 빠르게 지나갔다. 부모님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고 나 또한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눈에 보일 만큼 병색이 깊었다. 그러자 아버지 또한 엄마의 병환으로 인해 근심이 늘어갔고 따라서 엄마는 더욱 힘들어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울부짖으며 외쳤다 ‘오! 하느님 왜 그녀를? 차라리 나를 데리고 가시지요.’ 아버지는 엄마가 떠난 이후 엄마가 없는 안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하루 종일 흔들 의자에 앉아 주무시곤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아들아 난 네가 잘 자라주어 자랑스럽구나. 내 걱정 하지 말고 이제 너의 길을 가거라. 난 혼자 지내는 것이 괜찮다. 아들아! 세상에는 네가 할 일이 너무 많구나. 어서 가려무나. 그런 말을 하시는 아버지의 눈이 참 슬퍼 보였다. 특히 나에게 작별인사 할 때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세월은 흘러 난 이제 나의 자녀들에게 매일 입맞춤하면서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애들은 너를 통해 배우고 또 자라니 스스로 배우도록 지켜 보라. 그들도 역시 크면 너를 떠날 것이니.’ 난 아버지의 말씀을 모두 기억한다. 나 또한 아버지처럼 나의 애들에게 입맞춤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언제가 먼 훗날 그들도 내가 어떻게 그들을 위해 기도했는지 기억하고 나를 생각 해 줄 것을 믿는다. 반드시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 노래가 발표된 후 팬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실패로 끝났다.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도 크게 환영 받지못했다. 그 이유는 팝 음악을 듣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음악 애호가들이 이 노래가 가진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란 직책이 그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댄스하기에 좋은 빠른 비트의 음악이나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젊은이들이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된 이제는 이 노래가 가진 의미를 피부로 직접 느껴 요즈음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느끼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이 자녀를 가진 이제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본인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1974년에 발표되어 당시 외면했던 이 곡은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가장 관심있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아들의 위치에서 노래를 들었으나 이제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들어 노래가 주는 감흥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때문에 더욱 위축된 아버지의 위치가 이 노래를 들으면 위로가 되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의 선생보다 낫다’라고 말한 ‘죠지 허버트’의 말이 생각난다. 그 만큼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팬들이 극찬한 노래를 작곡한 그를 훗날 만날 수 있다면 난 폴 앵커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불과 나이 33세에 이렇게 교훈적으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는가? 우리들이 어떻게 자식들 앞에서 행동해야하는가를 제시하는 이정표인것 같다. 대부분 사람은 ‘폴 앵커’가 미국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1941년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태어나 1990년에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그는 팔순에 가까운 나이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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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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