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자택대피령이 내려진 지 90일이 다 되어가면서 경제가 빠른 속도로 재개되고 있지만 우리 일상이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든 ‘뉴노멀’의 시대를 맞고 있다. 또 미 전국으로 확산된 조지 플로이드 사태도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이 만연한 미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 사회 전반에서 ‘뉴노멀’이 제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는 역사적 전환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21세기 새로운 ‘뉴노멀’의 확립은 고사하고 20세기 권위주의 시절의 구습과 구태를 답습하며 완고하게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LA 총영사관이다.
초유의 코로나19 사태와 시위사태 과정에서 보여준 LA 총영사관의 대처는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관료주의적 태도와 권위주의정부 시절의 구태의연함이 전부였다.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를 잃거나 생업이 중단된 많은 한인들이 신음하고 있을 때 LA 총영사관이 한인사회를 위해 내놓은 대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법률과 규정을 들먹이며 “할 수 없다”를 반복하는 관료주의만 보여줬을 뿐이다.
재난상황에서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책무를 가진 LA 총영사관은 이번 사태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꼽혔던 서류미비 신분의 한국 국적 한인들을 위해 구호대책을 고민한 흔적도 보여주지 못했다. 정작 이들을 끌어안고 구호기금을 지원한 것은 한국 정부와 LA 총영사관이 아닌 바로 동포사회였다.
폭동으로 한인들의 피해가 속출하던 당시에도 LA 총영사관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4·29폭동 재연을 우려한 동포사회는 ‘커뮤티니 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를 통해 LA시와 카운티 정부에 주방위군의 한인타운 배치를 논의하는 등 한인 피해 최소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총영사관은 한인 피해 현황마저 파악하지 못해 이미 수십여건의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한인 피해가 전무하다”고 공표해 혼선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허둥대던 LA 총영사관이 최근 뒤늦게 별도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려하고 있어 이번 사태에 한인회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대응 중인 한인사회의 대오가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LA 한인회가 중심이 돼 비대위를 구성할 당시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던 총영사관이 사태의 심각성을 이제야 인지하고 별도의 비상대책위를 구성하려는 것은 그간 헌신적 노력을 다해온 분들은 빼버리고 우호적 인사만으로 또 다른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실적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총영사관의 이같은 시도는 한인사회를 무시하는 처사로 이번 사태에 대한 한인사회의 대응에 균열을 일으켜 오히려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총영사관이 우호적이거나 입맛에 맞는 소수 인사들 중심으로 영사 행정을 하는 것은 동포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이며, LA 총영사관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신임 총영사가 새로 부임한 이후에도 총영사관의 한인사회에 대한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최근 총영사관은 한인회에 보낸 온라인 서식에서 60~70만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를 마치 총영사관의 하급기관인 것처럼 표현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이 서식에서 신임 총영사는 손아랫사람이나 부하직원에게나 쓸 수 있는 ‘당부한다’는 표현을 사용해 한인회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 표현은 공무원, 특히 외교관이 자국민이나 재외동포에게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무례하고 부적절한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민역사 110년을 넘겨 성숙한 시민사회가 작동하고 있는 한인사회는 총영사관이 입맛에 맞는 일부 인사들을 앞세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각급 정부기관들 및 정치인들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인사회의 역량은 이미 총영사관을 뛰어 넘어서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총영사관이 해야 할 책무는 주재 지역에서 자국민을 범죄나 재난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동포사회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미국사회에서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해주는 것이다. 정부지원금을 이용해 한인단체를 길들이고 한인사회에 분열을 조장하려는 시도가 계속된다면 총영사관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한인사회에 군림하지 않고, 진정으로 한인 동포들을 돕는 LA 총영사관의 새로운 ‘뉴노멀’ 정립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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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안 LA한인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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