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취업 이민와서 반 년이 넘도록 바깥 구경도 못하고 종일 일만 하던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 푸른 잔디에서 허공을 보며, 엄마…엄마!를 외쳤다.
맘 놓고 실컷 울고 내 방으로 와 그 다음날 새벽까지 10장이 넘는 편지를 써서 언니에게 보냈다.
언니가 여성동아 1년치 구독 신청을 해 주었다. 한국일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10년쯤 후.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일보는 빠질 수 없는 내 생활의 일부다. 그 시절 잊혀지지 않게 읽었던 글이 조남사씨가 연재로 쓰신 “인생은 요지경”, 한국에서 유명했던 정인숙 살인사건과 최은희씨의 월북 스토리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곤 이순원 씨의 “길 이야기”를 매일 읽으며 그 분을 상상해 보았다(인터넷이 없던 시절). 왜냐하면 내가 한국에 있었던 때는 모두가 가난했고 힘들어 독일의 광부로, 간호원으로 아니면 우리같이 그래도 수속이 좀 쉬웠던 브라질과 미국 이민길에 올라 조국을 떠나야 했다. 이순원 씨 글에 여관을 하는 부잣집 뚱뚱보 딸이 그 비싼 라면 두 개를 한꺼번에 끓여먹는 게 너무 부러워 와-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단다.
그 당시 우리는 라면 하나에 물을 많이 붇고 끓여 그 국물에 밥을 말아 여럿이 나누어 먹던 때였다. 명절이면 서울에서 가난하게 하숙을 하던 학생이 고향에 내려가면서 빈 손으로 고향엘 가야하니 부모님께 미안하고 남들이 볼까, 저녁 노을이 다 진 다음에 고향엘 가면 동구밖에서 서성대며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난 그런 글들을 읽으며 훌쩍대기 일쑤였다. 이민 생활에 힘들고 외로왔던 나는 그런 글들을 빠지지 않고 읽으며 향수를 달랬다. 참으로 고마웠던 ‘한국일보’, 난 요즘도 오피니언 란을 읽으며 좋은 글이 있으면 그 글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읽어본다.
며칠전 이영묵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나도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 고통을 당한 사람이다. 그 공포감을 실제로 당한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있을까?
누가 그런 말을 했다. 둘 다 잘못하면 잘한 사람이 없다고, 잘못한 경찰이나 그것을 핑계로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 범죄자들, 그 누가 옳단 말인가… LA폭동 때 몰(Mall)을 며칠동안 닫았다.
몰에서 몰려다니며 약탈하는 범죄자들을 경비원들은 어찌 할 줄 모르고 우리는 공포에 떨며 가게 문을 닫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집으로 왔다. 5년전 볼티모어에서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고, 난 그들이 유리창을 깨고 내 차에 불을 지를까 또 부들부들 떨며 집으로 왔다.
이번엔 코로나 전염병으로 몰이 문을 닫아 공포에 떨 일은 없었다. 온 세계가 코로나 전염병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미국의 경제가 불안해진 이 상황에서 요즘같은 약탈과 방화를 일삼은 데모는 어느 면에서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한인들이 피해를 봤는가. 다운타운에서 그로서리를 하던 한인들 중에 흑인 범죄자들에게 억울하게 총 맞아 목숨을 잃은 분이 어디 한 둘인가?
눈이 와서 가슴 졸이며 가게 문을 못 열 때는 지붕이나 벽을 다 때려부수고 모든 물건을 약탈해간 많은 범죄자들, 또 강도들이 들어와 총을 겨누며 부부가 손을 들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3살짜리 어린 아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강도들을 향해 Hi, 하며 손 흔들고 있었던 모습, 아이 때문에 목숨을 건진 장로님 내외…. 목숨 걸고 생업을 이끌어 오던 날들이 너무도 지쳐 생업을 바꾸어 보려다 모든 것을 잃고 좌절에 빠져 생을 마감한 비극들….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런 생활 속에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미국 땅에서 각자의 모퉁이 돌을 박았다.
우리의 후손들은 반드시 각자가 처해진 곳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난 그것을 믿는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는 그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데모할 수도 없었다.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되니 그런 상황에서도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또 이런 일들이 눈 앞에 있으니….
소방소에서 응급 치료하는 우리 딸이 오늘 내 등을 쓸며 하는 말, “엄마, 이제 그만하고 은퇴하세요.”
귀가 솔깃해진다.
<
구인숙 / 메릴랜드 연합 여선교회 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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