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의 부당한 죽음을 계기로 경찰의 인종차별적 가혹행위에 분노한 항의시위가 3주째 접어들면서 선거를 앞둔 미국의 정치 기류가 하루하루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경찰 예산 끊어라(Defund the police)” - 시위대의 경찰 개혁 요구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대응이 팽팽하게 부딪치는 와중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한 이 새로운 슬로건은 아직 그 의미 해석조차 분분하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단순하다. 경찰에게 돈을 주지말자는 주장이다.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 운영할 수 없으니 경찰 폐지를 뜻한다.
그러나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흑인운동가들을 비롯한 경찰 개혁 지지자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경찰 예산을 재분배하여 진정한 재원의 영향을 결코 느껴보지 못한 채 심각하게 박탈당해온 흑인 커뮤니티에 투자하자는 것”이라고 ‘흑인생명도 중요하다’ 무브먼트의 공동설립자 패트리스 컬러스는 설명한다.
보다 근본적 개혁을 위해 경찰의 역할을 재정의하여 책임 범위와 관련 예산을 함께 축소하자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 법집행의 최대 난제 중 하나는 사회적 문제 대응에서 경찰의 역할이 계속 확대되어 왔다는 사실이라고 브루클린칼리지의 알렉스 비탈리 교수는 지적한다.
홈리스나 마약중독자, 정신질환자 소동에 경찰이 출동하는데 이들 문제의 근본원인을 제거할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경찰은 이들을 범죄자로 다루게 되고 이러한 역할 증대가 경찰을 더욱 비판의 상황에 처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역할이 전통적 법집행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것은 경찰 스스로도 일부분 인정한다. 2016년 달라스의 인종시위 와중에서 흑인 저격범에 5명의 경찰이 총격살해당한 후 데이빗 브라운 경찰국장은 “미국은 경찰관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모든 사회적 실패를 경찰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사회문제의 보다 효율적 해결을 위해 경찰 예산을 삭감하여 전문적인 사회복지나 헬스케어 부서로 이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찰 예산 끊어라”는 “겁낼 것도, 과격한 것도 아니다”라고 조지타운 법대의 크리스티 로페즈 교수는 강조한다.
그러나 그 심층적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하기엔 이 슬로건은 상당히 선동적이다. 짧고 직설적이다. 경찰의 잔혹행위에 분노한 시위자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하는 만큼 일상의 안전을 경찰에 기대고 있는 사람들에겐 두려움을 준다. 대다수에겐 ‘디펀드 더 폴리스’가 경찰 예산 대폭 삭감에 의한 치안 불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현재 경찰 개혁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높다. 5월29일~30일에 실시한 야후-유고브 조사에 의하면 절대 다수인 88%가 경찰의 무력사용 제한을 지지했다. 바디카메라 사용은 86%, 문제 경찰에 대한 조기 경고는 80%, 목조르기 금지는 67%가 찬성했다.
반면 경찰 예산 삭감 지지는 16%에 그쳤다. 민주당 16%, 공화당 15%로 비슷하다. 경찰 예산 삭감에 대한 우려가 요즘의 양극화 시대에선 드물게 초당적 반대를 이끌어낸 것이다.
“경찰 예산 끊어라”에 대한 호응은 이미 상당수 지역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진앙지인 미니애폴리스에선 글자그대로 경찰국 해체가 추진되고 있으며 LA,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 볼티모어, 시애틀에 이르기까지 민주성향 시 당국들이 경찰 예산 축소에 돌입했다.
이런 기류를 재빨리 포착한 것이 시위 강경 대응으로 수세에 몰리며 지지율이 하락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다. 대선후보 조 바이든을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개 표명하면서 거리두기를 분명히 하는 이 슬로건을 트럼프가 강력 조명하며 국면전환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법과 질서, 경찰 예산 끊지 않고 해체도 안 한다, 과격 좌파 민주당은 미쳐가고 있다”는 대통령의 트윗이 속이 훤히 보이는, 그러나 승산이 없지 않은 재선 전략을 노골적으로 과시한다.
민주당 내부에선 아연 긴장감이 역력하다. 두 가지 측면의 역효과를 우려해서다.
하나는 여론의 적극 지지 속에 대대적 연방 경찰 개혁법을 발의하는 등 오랫동안 추진해온 경찰 개혁의 전례 없는 기회를 잃을 위험이다. 개혁을 지지하는 집단적 사명감이 치안 부재를 두려워하는 개인의 불안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재난이다. 트럼프의 의도대로 범죄 증가의 공포를 조장하는 논쟁으로 치달을 경우 “우린 질 것이다.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한 민주당 전략가는 경고한다.
연방하원 민주당 지도부는 8일 일반의원들에게 경찰 예산 삭감 논쟁에 말려들지 말 것을 촉구했으나 이미 공격수위를 높이기 시작한 공화당은 9일 “디펀드 더 폴리스” 반대 결의안을 공식 상정했다. 예상치 못했던 “경찰 예산 끊어라”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루 빨리 논쟁의 프레임을 바꿔야 하는 민주당의 갈 길이 바빠졌다.
<
박록 고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6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만일 경찰이 없어지면 한인들은 어찌 될까요?
적당히 선을 지킬줄을 알아야지 여기저기에서 편좀 들어줬더니 선을 넘어버리네. 경찰예산 줄이고 해체수순으로 가게되면 치안유지는 어쩌라고? 시위에 참가한 이들에게는 뭐 범죄가 피해간다든? 지들도 범죄의 피해자가 될수있다는걸 알아야지. 본인들이 피해자가 되면 또 그때도 경찰 탓을 하겠지. 지들이 치안유지 어렵게 해놓은건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야. 이 미국에서 상식이라는게 점점 사라져간다는게 안타까울뿐이다.
경찰을 해체하면 당장 가정집 창문 부수고 침입하는 강도는 누가 막는가? 그렇지 않아도 건널목 막아서서 신문지로 유리창 닦는 시늉하고 돈내라고 하는 자들이 많은데 이제 아주 통행세 받으려 들겠네. 나도 모르겠다. 어디 갈데까지 가봐라. 한국이나 미국이나 모두 천지번복의 대재앙을 겪어봐야 정신들 차린다.
그럼 경찰 안하면 되지..
내가 경찰이면 이거 해먹겠냐.목숨걸고 하루10시간 이상 일했더만.맨날 모 같은역겨운 말만 들으니.나같으면 때려치고 다른거 한다.재발 정신이 있으면 고만좀해라 미 틴 좌파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