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OVID19 사태로 인해 시간의 여유가 있다보니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사색을 해볼 기회가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무엇인가에 빠져 한자리에서 골똘히 생각해 본 기회였다. 자신을 방해하는 요소를 걷어치우고 특별한 주제없이 이것저것 생각하는 몰입의 시간이 됐던 것 같다. 소위 멍 때리기 식 사색이다.
무엇인가에 빠져 오래 한자리에 머물며 골똘히 생각한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서 쉽지않은 일이다. 무선 전화기와 컴퓨터의 발전은 한시도 우리를 세상 현실에서 벗어나게 놔두질 않는다. 이러한 기술 발달은 분명히 문명의 진보이긴 한데 한편으론 고등 생물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하는 힘, 즉 사색의 능력을 빼앗아 버린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삶은 것은 축복된 삶이라고들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내어 그것에 몰입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 세계에 미칠 정도로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자기 사업에 흠뻑 빠져 성공한 사람들을 우리 사회는 존경한다. 그들은 과업을 완성하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흥분시키는 도전적인 과제를 선택한다. 그리고 외적 동기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내적동기로부터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만의 몰입 방법을 정리해 “성공하는 법"을 책으로 쓰기도 하고 강연도 하러 다닌다.
한글 사전에 의하면 ‘몰입’이란 무엇인가에 흠뻑 빠져 심취해 있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뜻한다. 주위의 모든 방해물을 차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어느 한 곳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하고있는 일을 건성으로 하기보다는 몰입해서 한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일하면서도 좋을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심한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을 때 무엇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동기부여가 생겨서 생산력도 향샹되고, 더불어 우울증이 치유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몰입했을 때 우리 삶 속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흔히들 몰입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하고있는 일에 흥미를 느끼거나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으라고 하는데 나는 사실 이 말에 공감하기가 힘들다. 내가 꿈꾸는 몰입은 단순히 흥미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의 의지가 들어간다. 그런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도박이나 컴퓨터 게임에 빠진 사람은 누가 독려하지 않아도 알아서 미친듯이 게임에 몰입한다. 몰입에 올인하는 방법은 사실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정도다. 물론 자기 통제가 결여된 부정적인 몰입을 우리는 ‘중독’이라 부른다.
사실 나는 살아오면서 중독이든 몰입이든 깊게 경험 해본 적이 드물다. 내가 아는 주위 분들이 모두 즐기는 골프도 딱 한번 필드에 나간 게 전부이고, 라스베가스에 가도 뷔페 가는 게 즐겁지 게임은 별로다. 음악을 가끔씩 듣지만 할 줄 아는 악기는 없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곤혹스럽다.
현실에서도 우리가 마주하는 일은 대부분 하고 싶은 일이기보다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더 많다. 학생에게는 공부가 그렇고 직장인에게는 업무가 그렇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조건 그 일을 좋아하고 의지를 가지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고려하지않은 고상한 외침에 불과하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일에 어떻게 창조적인 생각을 하며 몰입할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무수한 경쟁을 치룬다. 대학 입학에서부터 좋은 직장 찾기를 비롯해 매사에 경쟁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 경쟁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그 속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딱히 좋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의무적으로 몰입을 해야한다.
혹자는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과감히 뿌리치고 좋아하는 일들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 그것을 자신의 취미로 삼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긴다면 우리의 내면은 늘 희열로 가득 차 신바람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을 100% 인정하기에는 의구심이 따른다. 몰입할 것이 없다면 인생은 무의미해지고 권태롭다고 하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생의 재미를 찾기 위해 몰입 대상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재미가 없더라도 자기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사실 몰입은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단순히 운동 선수가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음악인이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것 등 살면서 크고 작은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하나의 몰입 이슈가 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왜 몰입해야지에 대한 해답은 아닐 것이다. 몰입의 목적은 그보다 좀 더 큰 그림이 필요하다.
물론 일에 대한 몰입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마땅히 할 일에 건성으로 하는 것이 더 나쁘지만 방향이 없는 무분별한 몰입은 경계해야 한다. 옳고 가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애정과 관심을 그 일에 쏟는다면 그 사람은 빛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최전선에서 본인의 감염을 무릅쓰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치료하는 의료진들에게 이런 몰입을 본다. 타국에서 현지인들의 박해를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는 선교사들로부터 또 다른 차원의 몰입을 배운다.
몰입의 대상을 찾는 것은 쉽지않다. 순간이 아닌 영원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 보인다. "가치를 찾을 수 없는 몰입이 없다는 게 뭐 어때서! 인생은 다 그런 거야, 별거 없어!"라는 지인의 말은 잠깐 위안을 주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당장 몰입할 그 무엇은 잘 안 보이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향해 최선을 다하고 싶고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목표와 계획이 분명히 보여 남에게는 하찮은 일로 보일지라도 몰입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느끼며 살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산다는 건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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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스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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