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가 승효상은 땅의 모든 터에는 고유의 터무니가 있으며, 위도와 경도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므로 그 땅에 무언가를 지을 때면, 그 곳에 살아왔던 사람들과 자연과 같이 땅의 기억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땅 위에 무언가를 건축하고자 할 때에 ‘그 땅이 이야기 해 주기에 그걸 따라 지으면 된다’라고. 말은 쉬워 보이나 땅의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그것이 그에게는 건축할 공간에 대한 애정이며, 그곳에 살아 갈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란 생각을 한다. 땅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인간의 욕심이나 이익을 우선시 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자연인으로써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듯 건축가는 공간에 새로움을 불어넣고 공간은 그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어둡고 좁은 통로가 있거나 밝은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창문이 있는 건축물이거나 그 어떤 것도 땅 위에 제 모습을 드러내고 나면 이후 그 곳은 공간과 하나가 된다. 더 이상 건축물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 어느 도로 위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지번과 이름을 갖으며 스스로를 정의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머문다. 쉼의 공간과 일터의 공간으로, 또한 다양한 존재의 이유로.
올해 초,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자택 대피령이 내려졌다. 공간을 공유하던 커뮤니티 시설들 또한 모두 폐쇄되고, 누구든 필수적인 일은 제외하고는 집 안에 머무르게 되었다. 첫 번째 한 주가 지나고 다시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건축물 중에서도 쉼터인 집과 그 공간들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공간이 밀집되어 있을수록, 창문이 적을수록, 공간이 폐쇄적일수록,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커져갔고, 집이 없는 홈리스들과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땅 위에 세워지던 건축물과 같이 사람들의 가슴에도 집이 지어지고, 공간이 그 곳을 메우는 걸 느낀다. 어떤 이들의 가슴 속엔 길고 긴 계단이 자리하고 있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전등이 켜지기를 바라며 그 불빛에 의지해 나아가야만 하는 힘겨움이 있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과 이들을 돌보는 의료진들, 그리고 가족들의 마음터에 지어진 집들이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멈춰 있을 수 없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도 ‘희망’이란 집 터를 닦아 놓고 기다리고만 있기엔 그 시간들은 막막함이며 고통일 것이다.
전세계 사람들을 자신들의 집 안에 스스로를 붙들어 놓도록 하며, 사람이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이렇듯 터무니없는 일일 것 같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이것이 현재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터무니 있는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에 사람들은 각자 새로운 마음터를 닦아야 함을 느낀다. 각자의 마음터에 집을 지어 올리는 일. 그러기 위해 건축가 승효상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집이 지어질 터인 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대로 집을 짓는다는 그의 이야기처럼.
마음터에 집을 짓기 전에 우리도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불안과 두려움의 이야기는 어쩌면 표면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 껍질들을 하나하나 걷어내다 보면 마음 안에서 진실로 원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고, 그 이야기에 따라 마음터에 제대로 된 집을 지어보고 싶을 지도 모른다. 내 마음터에 불만과 불안의 나무들로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다면 그 집에서의 쉼이 진정 편안하지 않을 것이기에.
땅에 집을 짓는 일과 마음 안에 집을 짓는 일이 서로 닮아 있기도 하지만 서로 많이 다르기도 하다. 땅에 집을 짓는 일은 전문가에게 의뢰해 건축 설계를 하고, 실제 시공은 누군가에게 맡겨 놓아도 되지만, 우리들 마음 속 터에 짓는 집은 그 누구도 대신 지어줄 수 없으며, 설사 누군가가 지어준다 한들 그것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기에 언제 어떻게 허물어져 버릴지 알 수 없다. 또한 땅 위의 집은 계약에 따라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살 수도 있지만 마음터에 짓는 집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그 터의 넓이와 재료들 또한 제한이 없다. 어쩌면 이 마음터에 짓는 집이야 말로 가장 일차적인 면역이 되며 언제 어디서나 영혼이 지칠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 마음터의 집이 넓고 편안할 수록 우리는 그곳을 스스로의 쉼터뿐만 아니라, 마음이 힘든 타인에게도 내어주며 다시 일어서 자신의 마음의 터를 일궈갈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견고한 자신만의 마음 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총균쇠(Guns,Germs,and Steel)의 저술로 1998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주기적으로 숲을 산책하고 시를 필사한다고 한다. 어쩌면 그 시간이 그에겐 마음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일 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터를 닦으며 터무니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터무니 있는 세상에서 중심 있게 살아가는 일상이 함께하길 소망한다.
<
김소형 (SF한문협 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