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슬럼가… 사람, 동물, 쓰레기가 뒤섞여 만들어낸 소음과 냄새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동네가 있다. 불운의 대표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듯 각기 다른 사연을 짊어지고 생존을 위해 맨발 몸부림이 처절한 곳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 오빠, 동생과 힘겹게 살아가는 10세 소녀 피오나 무테시… 학교 대신 시장을 누비며 날마다 이 생존 대열에 휩쓸려 살아간다. 어느 날 공짜 죽을 얻어먹기 위해 우연히 체스 가르치는 곳을 찾게 되고 슬럼가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스포츠 선교를 하는 코치를 만나면서 꿈도 꿀 수 없었던 인생이 찾아오는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잠재된 천재성이 발휘되면서 우간다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체스의 신동으로 불리며 아프리카와 세계를 놀라게 한다. 드라마 같은 피오나의 이야기를 디즈니에서 영화로 제작하여 ‘체스의 여왕’(Queen of Katwe)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이십여 년간 우간다에서 많은 피오나들을 보았다. 대안 없는 생존의 장벽에 떠밀려 하루하루 벼랑끝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에게 꿈이란 옥수수죽 한 그릇과 지붕 덮인 방 한칸, 그 이상은 생각하기도 벅차다.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나고픈 욕구는 간절하지만 혹여 큰 꿈을 꾸다 자칫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질까 두려워 출구 없는 악몽에 안주해버리는 그들의 현실… 그 두려움을 증명하듯 피오나 역시 외부와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마음에 거품이 끼고 슬럼가에 적응하지 못한다. 높아진 마음으로 임한 경기에서 패배의 쓴 잔을 마신 후 영원히 슬럼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의 늪에 빠지는 그녀… 하지만 마침내 우승을 거두고 그토록 꿈꾸던 집을 사서 엄마에게 안겨주며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한국도 배고프던 시절이 있었다. 세끼 대신 두끼 먹고 밥 대신 죽을 먹으며 흰쌀밥 먹는 것이 꿈이었던 그때….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각오로 새벽을 깨우고 눈물을 삼키며 미래를 개척하던 부모형제가 있었다. 희망을 위한 헌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 덕분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고,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가슴 벅찬 오늘을 이루었다.
불과 몇십년 만에 꿈을 현실로 살아가는 우리… 이제는 쌀밥이 지루해 맛집을 찾고, 생존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요리한다. 이쯤 되면 우리도 세계를 향해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잘살게 된 한국 땅에서 날마다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끊는다. 배고플 땐 죽어라 살았는데, 살만하니 왜 스스로 죽는 걸까? 배고플 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밥인 줄 알았는데, 배부르고 돌아보니 인간을 살린 것은 밥이 아니라 꿈이고 희망이었다. 가난이 꿈을 엮어내고 그 꿈이 길을 만들어 살아가게 해준 것이다.
지금은 꿈이 고픈 시대이다. 배고픔을 타개하려는 생존본능과 맞설만한 결사적인 삶의 동기가 필요하다. 수명은 연장되고 생활수준은 높아졌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삶의 이유를 말해달라’ 아우성이다. 가정, 학교, 사회, 어디에서도 진지하게 배운 바 없는 삶의 이유, 존재 목적, 혹은 꿈이라고 부르는 이것의 공백으로 허기져 신음하는 가련한 시대.
케이티 데이비스, 18세 백인소녀, 부유하고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던 그녀는 대학 입학 전 1년을 우간다에서 지낼 계획으로 선교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Kisses from Katie)는 우간다 어린이 14명을 입양하여 키우는 케이티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미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명문대 진학, 상류사회 진출이라는 성공 공식에 편승해 살았을 그녀가 우간다에서 생존의 바닥에 방치된 어린 피오나들을 만난 후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이다.
사랑의 포대기로 감싸 안은 14명 아이들의 행복이 그녀의 꿈이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무모한 선택으로 보일 이 관계 형성을 통해 그녀는 그 또래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폭발적이고 강인한 삶의 동력을 공급받았다. 그렇게 그녀는 행복은 꿈의 크기가 아닌 꿈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용기의 기초 위에 지어지는 것임을 증명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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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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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문드러진 영혼이 맑은 물을 흐리는 일이 있지만 맘좋고 착하고 야무진 삶을 선사하는 젊은 파란 하늘처럼 투명한 이들이 있기에 지구촌을 그래도 돌아간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이들에게 한없는 축복을, 썪어문드러져 냄새가 진동하는 죽어가는 영혼 일지라도 사랑으로 보듬어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수있는 자연 인간 세계가 되었으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