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역병으로 두 달간 이발을 못 했다. 아내도 머리가 길어서 답답해했다. 단골 미용실에 갔는데 문이 잠겨서 거기다 메모를 해놓고 왔다. 전화 한 번 주시라고. 전화가 왔는데 내일 아침 10시에 오라는 것이다.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지 말라는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 남편과 싸웠다는 것이다. 남편이 절대 문을 못 열게 한단다. 만일 걸리면 1000불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루는 하도 답답해서 샤워를 끝낸 후 가위로 앞머리와 옆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며칠이 지났다. 뒷머리를 자르지 않아 불편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에게 부탁을 했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아버지의 머리를 잘라 주셨다. 미국 오셔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발소에 간 적이 없이 어머님이 잘라 주신 것이다. 시카고에 있을 때는 장인께서 잘라 주셨다. 내 부친도 같이 잘랐다. 부친이 미국 오셨을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사돈! 사돈! 하지 말고 사돈어른이 저보다 연장자시니까 ‘형님! 아우!' 합시다. 이제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아세요." 부친은 ‘허허' 웃고 말았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오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 뭐 잡수고 싶은 것 있으세요?" 그랬더니 “입맛이 없으니 제과점에 들러 빵을 좀 사오라"고 하신다. 제과점에 들러 25불 어치 빵을 샀다. 하나에 2불, 3불하는 게 꽤 비싸게 보였다. 내가 먹을 것이라면 비싸서 안사고 싶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부모님께 사드리는 거니까 아낌없이 돈을 썼다.
어머니 아파트로 가서 부모님과 함께 그것을 맛있게 나눠 먹었다. 다 먹고 나서 내가 어머니께 부탁했다.
“어머니, 나 머리 좀 잘라 주세요." “아이고 힘들어서 짜를랑가 모르것다. 힘이 하나도 없어서."
어머니께서는 가위와 비닐봉지를 가지고 나오셨다. 웃옷을 벗고 비닐 가운을 입으려 하니 좀 불편했다. “그럼 목욕탕에 가서 옷 벗고 앉아라" 하셔서 목욕 통속에 들어가 옷을 다 벗고 의자를 놓고 앉았다. 오랜만에 어머니 앞에서 벌거숭이가 된 것이다.
어머니 앞에 벌거숭이로 앉으니 옛날 시골에서 설날 전에 큰 플라스틱 통에다 물을 받아 놓고 어머님이 목욕을 시켜 주셨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겨울철에 몇 차례밖에 목욕을 못 했다. 여름에는 주로 냇가에서 하고 겨울이 되면 물을 데워서 해야 했다. 또 광주나 송정리로 나가야 했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설이나 추석 전날에 목욕을 했다. 그날은 온 가족이 목욕을 하는 날이다.
어머님은 아이들 순서대로 목욕을 시켜주셨다. 내가 장남이니 제일 먼저다. 그 날은 때 빼고 광내는 날이다. 어머님이 때를 밀어주시면 어떻게 아픈지 “아야! 아야!" 소리를 내면 무엇이 아프냐고 더 세게 밀어 주셨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내 뒷머리를 어머니께 맡겼다. 물론 앞으로가 아니고 뒤로 앉았다. 어머니는 내 뒷머리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주셨다. 싹둑싹둑 머리 잘리는 소리가 너무 상쾌하게 들렸다. 어머니는 자꾸 말씀하셨다.
“층층으로 잘 잘라야 하는디 잘 안 된다. 잘 안 된다."
다 자르고 나서도 “아이고, 잘 잘랐는지 모르것다. 거울 한번 봐라." 하셨다
머리가 1인치 가량 줄어드니 너무 시원하고 살 것 같았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서 보니 거울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모자의 합동 작전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좋은 솜씨였다. 2개월 만에 머리를 자르고 나니 너무 상쾌했다. 중은 제 머리를 깎을 수 없지만 목사는 어머니와 함께 자기 머리를 깎을 수 있었다.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없다"는 영어 표현은 이렇다. “You cannot scratch your back." “혼자서는 너의 가려운 등을 긁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지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뜻이다. 독불장군은 없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못 하는 일은 다른 사람과 같이 합력하여 하면 빠른 시일 안에 더 잘 할 수 있다.
코로나 역병으로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다. 비록 혼자지만 우리는 모두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고 전화로 연결해서 일을 해야만 한다. 결국 협동(net work, co-work)해서 하는 것이다. 이번 어머니날은 가족 모임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으로 함께 하는 시간들이 되었기를 바란다. 부모님께 “사랑합니다"라는 전화라도 다들 하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형제간 우애로 더욱 효심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
배석휘 / 은퇴 목사, 건축업. 클립턴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