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뉴스를 진행하는 앤더슨 쿠퍼가 아버지가 되었다. "누구보다도 와이어트(아들의 이름)를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보살펴 준 대리모에 대한 큰 고마움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재난 기자로 유명한 기자이지만 성 소수자로 더 알려진 앤더슨 쿠퍼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앤더슨은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세계의 중요한 현장을 누비는 기자로 유명하다. 재난 기자답게 방탄복도 입지 않은 상태로 취재를 하다가 어린아이를 구하는 일도 있었고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는 직접 달려가 긴박한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했다. 일본 지진 때나 올랜도 나이트 총격사건 때도 며칠을 직접 취재하며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도해 큰 상을 받기도 한 진짜 기자다운 기자다.
새치머리를 패션으로 승화해 젊은 나이부터 지금까지 머리가 하얀 게 꽤 인상적이다. 어머니가 미국의 철도 재벌이었던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의 후손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귀족적인 인물보다는 재난이 터지면 제일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상황 보도를 하는 언론인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특히 2002년부터 타임 스퀘어에서 생중계를 하는 앵커가 앤더슨 쿠퍼고 2012년 싸이의 말춤을 같이 추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2006년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자서전 ‘Dispatches from the edge'를 출간했다. 그는 재벌 3세로서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이른 부재와 어린 나이에 자살한 형에 대한 마음의 병이 심해 우울증이 있다는 내용과 가족사의 비극 그리고 앤더슨의 예일대학 시절 등 평범한 삶을 살아도 될 듯하지만 어려운 도전의 삶을 택한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담담하게 썼다. 그중에서 단연코 제일 핵심으로 떠오른 건, 그가 성 소수자임이 밝혀진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대리모를 통한 득남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성 소수자의 항쟁의 역사는 아마 인류의 역사와 같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공민왕이 처음으로 활자 되어 묘사된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 뒤로도 신라 혜공왕의 기록에도 성 소수자에 근거한 유사한 내용이 있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인 소크라테스나 미켈란젤로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같은 예술인도 대거 이 안에 속한 사람들이다. 내가 어릴 때 유명했던 팝가수 보이 조지는 여장 가수라는 이미지로 그려진 대중적 성 소수자 중의 한 명이었다. 지금 시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애플의 CEO 팀 쿡을 빼면 섭섭한 일이다.
한국에서 동성애가 불법은 아니다. 개인의 성적 지향은 인정하지만, 동성결혼은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은 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다른 여러 나라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제도를 속속들이 구축해 가고 있고 미국은 2015년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성 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인정함을 넘어 제도적 차원에서 끌어안고 보호하겠다는 의미로써 큰 획을 그은 셈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에 성 소수자를 위한 아시안 큐어 대회가 열렸다. 이로써 전 세계 선진국 흐름에 동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암묵의 표현, 반대조차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문제이다. 쉬쉬 숨기고 숨으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에 의해 성 소수자들은 밝은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자꾸 음지로 밀려 들어간다.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이유는 많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퍼트린다’라는 말이다. 동성이 아니라 이성끼리도 혈액이나 침으로 옮길 수 있는 문제를 동성애자에게만 화살을 꽂는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보통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평범한 학술적인 논의조차 이런 목적으로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특정 집단에서 특정 질병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 집단을 매도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번에 경험한 코로나 19가 우한 혹은 중국 바이러스라 이름 지어져 집단 인종차별로 번지는 심각한 상황을 우리는 보았다.
기독교적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한다.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가? 낮은 자에게 선의를 베풀고 궁극적으로는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을 하나 되는 게 기독교 정신인데 더욱 감싸야 할 성 소수자를 왜 비난하는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을 왜 다르다 비난하는가? 종교적 잣대로 본 죄가 사회의 죄로 낙인찍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자 소신 있게 각자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를 존중해주고 살아갈 때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남이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게 아니다. 살면서 우리가 공통으로 지켜야 할 것을 만드는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답일 수는 없다. 그 속에서 말없이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지나, 수필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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