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오늘(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킨다. 내가 미국에 이민 오기 바로 전까지 어머니날로 불리던 이 날이 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매년 5월의 둘째 일요일이 어머니날이다. 그러니 이번 주 일요일인 5월 10일이 어머니날인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날은 6월 셋째 일요일이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이제 제법 오래 되었다. 그동안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가능하면 안 하려고 노력했다. 생전에 불효한 것도 많고 제대로 잘 못해드려 후회가 막심한데 생각하면 괴로울 것 같아서였다. 또한 눈물이 많아 내 스스로 감정조절을 할 자신이 없는 것도 큰 이유였다.
여느 할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손주들 사랑이 끔찍했다. 나의 두 여동생들 집에도 손주가 있었으나 타주에 사는 관계로 가까이 있는 두 친손주들에게 모든 사랑을 쏟았다. 결혼 후 우리와 따로 살았던 어머니가 애들이 어렸을 때 베이비씨팅을 해 주셨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 보다 할머니가 보아주는 것이 당연히 더 낫고 손주들을 좋아하는 어머니에게도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애들을 보아 준다는게 항상 좋은 것 만도 아니고 여러가지 힘든 점도 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불평 없이 애들을 보아주셨다.
그런데 처음에는 오해를 사서 크게 혼 난 적도 있었다. 다른 곳에 맡기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조금이나마 용돈으로라도 쓰시라고 드렸는데 그게 섭섭했던 모양이다. 절대로 돈 받자고 애들을 보아주시는 게 아니라는 것 잘 안다는 말씀을 드렸는 데도 화를 쉽게 거두시지 않았다. 나중에 드리는 용돈을 모아 애들에게 사주고 싶은 것도 맘 편히 사 주실 수 있게 될 때까지 어색했던 기간이 제법 되었다.
원래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에 사셨던 부모님들은 애들을 쉽게 봐 주실 수 있도록 나와 가까운 페어팩스로 이사까지 하셨다. 당시에 아직 은퇴 전이었던 아버지는 워싱턴 DC로 출퇴근을 하셨기 때문에 훨씬 더 불편해지는 상황이었는 데도 별 말씀 없이 손주들을 위해 이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를 떠나 보내는 고별예배 때 나의 둘째 애가 할머니를 추모하는 인사를 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까지 대학생이 다 되었는 데도 ‘우리 강아지’라고 불리던 손주였다. 나도 그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내용이었는데 손주를 배려한 할머니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나의 집 앞에는 도토리 나무들이 있다. 도토리가 자라 익어 떨어지면 할머니께서 주워 가고는 하셨다. 도토리묵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다람쥐와 경쟁을 하는 듯 한 할머니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도토리가 나중에 묵으로 만들어져 반찬으로 밥상에 올려지거나 간식거리로 제공되는 것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
한 번은 둘째가 초등학교에서 소풍을 갔었을 때였다. 도토리 나무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도토리들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 생각이 난 둘째는 그 중 보기 좋고 큰 것들을 골라 모으기 시작했다. 제법 많이 도토리를 주워 모은 둘째는 마음이 뿌듯했다. 좋아하실 할머니의 얼굴을 떠 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절로 났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할머니 집 바로 앞에서 통학 버스를 내린 둘째는 바로 할머니 집 문을 열고 들어 갔다. 그리고 주워 온 도토리를 모두 내 놓았다. 물론 할머니가 기뻐하셨던 것은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그 다음에 예기치 못 했던 일이 생겼다. 크고 보기 좋았던 도토리 대부분이 벌레 먹었던 것이었다. 둘째는 실망보다는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할머니는 벌레 먹은 것에 대해 아무런 말씀을 안 하셨다. 대신 칼로 벌레 먹은 부분을 모두 잘 도려내고 나머지를 모아 도토리 묵을 만들었다.
손주의 정성을 역시 할머니답게 잘 감싸 주셨던 배려가 고별예배 때 나의 마음 속 깊이 다시 한 번 울려 주었다. 평생 그렇게 살았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이제는 다 성장한 나의 두 애들에게 어머니날을 맞아 특히 생각나는 이 이야기만큼 과연 나는 해 주었을까 하는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을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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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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