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는 가운데 나라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별 감염자 수를 고려하지 않고 전국의 개학과 유흥업소 영업재개 시점 등을 대체로 동일하게 결정한다. 그러나 서유럽 등 해외에서는 학교와 업소 등의 문 여는 시기나 방식이 우리나라와 다른 경우가 많다.
덴마크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조치를 완화하면서 지난 15일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부터 문을 열었다. 20일부터는 미용실·치과·물리치료실·운전학원 등의 영업을 재개했다. 다만 10명이 넘는 모임 금지 조치는 다음달 10일까지 유지하고 500명 이상의 모임은 최소한 오는 9월1일까지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프랑스는 봉쇄조치를 해제하는 다음날인 다음달 12일 초등학생(5~11세) 등교를 가장 먼저 허용하고 이후 중고교 일부 학년을 등교시키는 식으로 25일까지 모든 학교의 문을 연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학급마다 반씩 나눠 격일제로 등교”
일부 서유럽 국가들이 단계적 개학을 어린아이부터 시작한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 어린아이들의 감염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개학에 따른 감염 위험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염자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하는 20세 미만 연령층의 코로나19 감염률은 1%에도 못 미친다. 둘째, 어릴수록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야 맞벌이 부모들이 일터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다. 네덜란드 전문가들은 “어린이집·초등학교·특수학교 운영을 재개하면 아이들과 부모의 감염이 조금 늘어날 수 있지만 의료수요나 입원이 급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와 정반대다. 정부는 밀접 접촉이 불가피한 유흥업소 등의 영업재개를 먼저 허용했다. 등교개학은 거리두기 완화의 맨 뒤로 미뤘다. 개학 순서도 모든 게 입시·고학년 위주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학도 이달 9일 고3·중3학년부터 시작했다. 이어 16일 고1·2 및 중1·2학년, 초등 4∼6학년의 원격수업이 재개됐고 20일 초등 1∼3학년이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확진자발생률 350배까지 차이나는데 한 잣대 적용
우리의 경우 등교개학을 포함한 모든 정책이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으로 결정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과학적 기준 제시가 상당히 미흡하다. 23일 0시 기준 인구 10만명당 코로나19 확진자 발생률은 대구(280.7명), 경북(51.2명)이 압도적으로 높고 전국 평균은 20.6명이다. 하지만 전남(0.8명), 전북(0.9명), 제주(1.9명), 광주(2.1명)의 확진자 발생률은 매우 낮다. 기초자치단체별 통계가 있다면 한 명도 없는 곳들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국이 한꺼번에 등교개학을 하는 것보다는 확진자 발생률이 매우 낮거나 발생하지 않은 지역부터 학교 문을 열어 확진자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체크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지역별 차등화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코로나19와 거의 무관하고 온라인 수업 여건도 좋지 않은 농어촌과 도서 지역까지 하나의 잣대로 묶어 임시방편인 온라인 수업을 강요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분포를 고려하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국적으로 똑같이 시작하고 끝내겠다는 것은 덜 과학적인 접근법”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협의해 확진자가 제일 적게 나온 지역을 중심으로 먼저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게 좀 더 과학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방역당국이 거리두기 완화의 잣대로 내세운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50명 이하,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확진자 비율 5% 이하’에 대해서도 “지역별로 세분화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등교개학을 비롯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시기를 지역별로 차등화하는 등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나름대로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다른 선진국들이 겪지 않은 메르스 사태를 2015년 경험하면서 감염병 대응 체계를 손질한 덕분이다. 물론 인접국인 중국이 ‘코로나19 대란’을 먼저 겪은 것도,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진화 노력도, 의료인들의 희생정신도 한몫을 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적지 않다. 감염병전담병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립중앙의료원은 낙후한 시설과 법령 미비로 중증 감염병 환자들을 많이 치료하지 못했고 사령탑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또 오기 전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가동해야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도 각기 바쁜 병원들을 상대로 코로나19 환자 치료지침 마련 등에 필요한 임상정보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중앙임상위는 지난달 23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져 경제·사회적 격변으로 이어지고 향후 진행 상황에 대한 예측도 어려운 만큼 중앙감염병병원 설치를 신속하게 구체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감염병전문병원 운영방안’ 연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100병상 이상, 권역감염병전문병원은 36병상 이상의 음압격리병상을 갖춰야 한다. 중앙과 3개 권역병원에서 208개의 음압격리병상을 확보했다면 대구·경북에서 음압격리병상이 부족해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참사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정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한 것 외에는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인색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 공언했던 ‘질병관리본부 독립’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아무리 본부장이 차관급이라 해도 독립된 부처가 아니어서 예산 편성권과 인사권이 없으면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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