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용 목사(보스턴 시티라이프교회)
저의 이름은 스티븐 엄(한국명 엄태용) 목사입니다. 저는 장영춘 목사님을 거의 30여년간 알고 지냈습니다.
제가 스코틀랜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퀸즈장로교회를 떠나기 2개월 전에 장 목사님은 저를 당회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저는 시무장로님들 앞에 앉아 있었고 그때 장 목사님은 장로님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왜 엄 목사님을 좋아 하는지 아십니까?” 장로님들은 웃으시면서 답은 안하고 계셨을때 장 목사님을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엄 목사님은 지적을 받으셔도 마음에 두지를 않으십니다.”
장 목사님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왜 그렇게 말씀을 하셨을까 하고 의문을 하실수 있겠지만 장목사님을 잘 아시는 분이라면 정확히 무슨 말씀인지 아실 것입니다.
교회의 부목사로 섬기면서 장 목사님이 꾸짖으실 때도 많았고, 직설적으로 지적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당시 저는 자부심이 많은 어린 목사였음으로 이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지요. 물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왜 목사님께서 그렇게 하셨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지 않는 한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집 자녀의 미래 보다 본인 자녀의 교육의 성공에 더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장 목사님께서 저의 삶과 사역을 걱정해 주신 이유는 저를 훈련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의 삶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제가 최고의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훈련시키는 아버지와 같이 저를 겸손하게 만드시려고 많은 훈육을 하셔야 했습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아버지와도 같았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주신 사랑을 이해 하셨기에 저를 잘 사랑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목사님만큼 저의 삶에 커다란 영향력을 주신 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원히 감사할 것입니다. 장목사님은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목사님은 세부 지향적이시고 완벽주의자 이셨습니다. 그러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이 장 목사님은 하나님을 자신이 아는 최고의 방법으로 섬기고 싶어 하셨고 저는 이런 목사님을 경이롭게 생각하고 존경 했습니다. 저는 이런 목사님의 충실한 복음의 유산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본받아서 이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김재열 목사(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전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제가 장영춘 강도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55년 전이었습니다. 그 분은 강습회 강사로, 난 주일학교 교사로서 여름성경학교 강습회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온 종일 성경을 얼마나 잘 가르치시는지 흠뻑 빠졌습니다. 그때부터 장 목사님은 나의 신앙과 삶의 첫 사랑이었고 흠모의 짝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서울신학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신학교 도서관에 가면 맨 먼저 교계 신문에서 장영춘 목사 이름 석자를 찾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만약에 찾으면 그 분 교회에 가서 한 없이 더 배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을 찾아도 그 분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미국 유학을 떠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내 맘에 아쉬움이 녹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24년이 지났습니다.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장 목사님을 토론토에서 목회할 때 노회 강사로 만났습니다. 그렇게 사모했고 흠모했던 목사님을 첫 대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묻어왔던 그 연모했던 사랑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30대의 젊고 예리했던 신선한 옛 모습은 사라지고 대머리에 뚱뚱한 모습에 여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아! 추억은 가슴에 묻혀 있을 때 진짜 추억임을 그 때만치 실감 있게 깨달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난 뉴욕으로 목회지를 옮겨왔습니다. 장 목사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빈번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언제나 먼저 불러서 후배들에게 후하게 베푸셨습니다. 교회가 한 참 어렵고 힘들 때였습니다. 장 목사님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기관들 그리고 사회에 좋은 리더십과 영향력을 나눠주시고 가셨습니다. 장영춘 목사님은 모두가 잘 아는 대로 지대한 공적을 남기셨습니다.
이제는 평안한 곳에서 풍성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셨던 남은 가족들과 평생 바쳐 사랑하셨던 퀸즈장로교회 성도들 또한 미주 땅에 남겨 놓고 가신 모든 후배들… 모두가 장 목사님의 뒤를 힘차게 따를 것을 새기며 환송의 인사를 드립니다.
■양민석 목사(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 회장, 뉴욕그레잇넥교회)
장영춘 목사님은 교단도 다르고, 연세도 차이가 많아 그리 가까이 뵐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음이 왔습니다. 바로 장 목사님의 열매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장 목사님은 스승이셨습니다. 요즘 스승이라는 말을 듣기 희귀한 때임에도 그 분은 스승이셨습니다. 교회와 교계를 이끌어 가시는 영적스승이셨으며, 신학교를 세워 학문적 스승으로 후학들을 세워가셨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장 목사님의 자상하신 인격을 닮고자하는 인격적인 스승이셨습니다. 그리고 교계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마다 함께 앞에서 방향을 제시할 줄 아는 한 발 앞선 스승이기도 하셨습니다. 스승은 참된 모범과 존경을 동반하지 않고는 감히 부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이제 고인의 떠난 자리에서 가장 많이 스승님! 이라는 고백들을 듣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열매들이 건실하게 세워져 가고 있음 또한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 영적 스승을 잃은 교회와 교계는 참으로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가장 장 목사님을 사랑했던 유족들의 슬픔에 다시 한 번 애도를 표하며, 천국의 소망으로 위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장석진 목사(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 증경회장·뉴욕성결교회 원로목사)
장영춘 목사님의 소천에 조의를 표하며, 사모님과 온 가족위에 성령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76년도 뉴저지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창립예배를 드릴 때 뉴저지에 계셨던 장영춘 목사님을 설교자로 초청하여 큰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저를 사랑해 주시고 목회를 지도해 주셨습니다. 80년도에는 필라델피아의 Faith 신학대학원에 저를 안내해 주셔서 함께 기숙사 생활도 하며 선배가 되셨습니다.
장영춘 목사님은 목회에 대승하신 분입니다. 당시 지역 특성상 조용한 뉴저지에서 한인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퀸즈 플러싱으로 나가시어 한인교회 최초로 교회를 건축하시고, 수천 명의 교인들을 모시고 목회하신 목회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아울러 그분의 미주 교회와 이민 사회, 국내외 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를 섬기신 일들은 너무나 크시며, 이 분은 자랑스러운 복음주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이 분의 사랑을 받은 저는 이런 귀한 분을 먼저 보내매 섭섭함을 금하지 못하고, 그분을 기리며 조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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