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무엇이 가능한 지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BBC방송은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전염병 최고 위험단계 상황에서 전세계 47개국이 선거를 잠정 중단, 연기한 가운데 유일하게 총선을 치른 한국의 총선 투표행렬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전했다(2020.4.15.). 그 외 CNN등도 많다. 사실 세계 어디나 정치인들은 어쩌면 코로나보다도 선거에 더 관심이 클지도 모른다.
1등은 두주무로(頭走無路)다. 맨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길이 없다. 그가 가는 곳이 길이고,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이 길이 된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불과 3개월여 만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보면 어느 나라가 ‘위기대처능력’이 최고인지 금방 확인된다. 한국이 세우면 그것이 정답인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되었고 66.2%투표율은 28년 만에 최고라고 한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넘었다. 상대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104석에 그쳤다. 총선이 끝나면 여러 가지 정리해 둘 게 많다. 거대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승리에 대한 미담은 사라지고 숙연하다.
거슬러 보면 17대(2004)에는 야당이 힘없는 대통령을 탄핵(노무현)으로 밀어붙이다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었지만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했다. 그 다음 18대(2008) 총선에서는 당시 야당(한나라)과 범 보수는 212석으로 범 진보(민주+민노)의 88석의 2배가 넘고 개헌도 마음대로 할 정도였다. 당시 여당은 곡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2008년 말에는 정권까지 내준다. 오만해진 그들은 다음해(2009.5.23.)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나서도 거의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죽음을 가지고 희롱, 힐난하는 것이 일상사다.
그 7년 후에 세월호 사건(2014.4.16)이 난다. 그런데도 어느 한쪽에서는 실제 피해당사자들에게 아직도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묶여 있는 듯하다. 차명진의 막말은 그걸 대변하고 있고, 그 발언 이후에 그에게 후원금이 넘쳐났다는 것은 차라리 희극이다. 그것에 대한 국민들 답변의 일부가 이번 총선의 결과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1928년, 전수린 작곡, 왕평 작사, 이애리수(1910~2009)가 부른 가요다. 당시 개성공연때 작곡된 노래로, 옛날에는 찬란했으나 현재엔 그 흔적조차 없어지고 폐허가 된 고려의 만월대를 보고 얻은 감명을 소재로 하였다. 따라서 곡명의 황성도 황실의 궁궐인 皇城이 아닌 황량해진 성이라는 荒城이다. 왜색풍 노래라는 설도 있었지만 일제때는 금지곡이 되기도 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부르니 일제 패망이나 경주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누가 부르든 염세패배주의, 복고주의적 성격의 노래이다.
민초들은 항상 짓밟혀 살아왔기 때문에 선거에서 집권세력의 변동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덤덤하다. 엘리트그룹들은 좌절을 겪으면 다른가 보다. 엘리트의식, 엘리트 정신은 역사에서 중요하다. 일제하의 독립운동도 그런 선비들의 엘리트 운동이었다. 그것이 엘리트의 역할이고 사명이다. 겉은 엘리트 같은데 그 반대도 많다. 선민의식(選民意識)이나 어쭙잖은 우월의식이 그것이다. 대체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가장 뒤늦게 안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그런 장면들이 짙게 그려진다. 이번 선거에서 그와 비슷한 장면을 ‘강남선거’에서 보았다.
부와 권력에 있어서 서울의 강남은 대한민국의 상징적 지역이다. 태구민(태영호) 전 조선노동당 외교행정위원이자 주영 공사였던 그가 친가와 처가(오극렬 중앙군사위원)등이 평양의 고위직에 현역으로 당당한데도 이번 총선에 대한민국의 심장 강남지역 국회의원으로 공천을 받고 당선되었다. 70년대 ‘적대적 공생’의 실제가 재현된 역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해프닝은 지면상 따로 다룰 게 너무나 많지만 한마디로 치졸의 극치요, 국가적 망신이다. 미안하지만 그래가지고는 그들만의 그렇고 그런 세상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차라리 노래 속에서나 애환을 달래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3절마저 들려주고자 한다.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어도, 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 깊이 묻어놓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
강창구 /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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