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공포에 출렁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비상이다. 올해 초, 진원지인 중국 우한이 봉쇄될 때만 해도, 한국에 급격히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 소식에도, 세계 보건 기구의 ‘팬데믹’ 선언에도, 코로나 위험 지역의 나라들이 연일 뉴스에 언급되는 동안에도, 설마 세계 최강 미국마저 위기에 봉착할 줄은 몰랐다. 감염의 거대한 물결이 바다를 넘고 대륙을 가로지르더니 어느 한 순간 미국 전역이 붉은색으로 뒤 덮였다. 도시 한가운데 폭탄이 떨어진 듯, 평범하던 일상이 순식간에 패닉으로 돌변했다.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는 공포감으로 마트는 아수라장이 되고, 경기는 침체되고, 소문들은 무성하다. 불안과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가운데 국경이 폐쇄되고 곳곳에서 발 묶인 사람들이 아우성이다. 한 점 크기도 안 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 전체가 하나로 묶여 휘청대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저만치 떨어졌다. 전시 체제가 되어버린 사회를 보며 전쟁과 질병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위협해서 파멸에 이르기까지 어둠, 절망, 공포를 끊임없이 불어 넣는 것이다.
17세기에 ‘소 빙하기’가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 저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자연재해가 극심했던 때다. 영국의 템스 강이 두껍게 얼어 붙어 그 위에서 코끼리가 곡예를 했고, 아프리카 이디오피아에 눈이 내려 일년 내내 녹지 않았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농작물 재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유럽에서 기근이 급증했다. 영양부족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전염병 피해가 잇따라 발생했고, 기근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면서 전염병이 삽시간에 여러 도시로 퍼져 나갔다. 이로 인해 급격한 인구 감소가 일어났는데, 전쟁 보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중국도 혹독한 재난을 겪었다. 극심한 한파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가뭄으로 농업이 붕괴되었으며, 기근으로 길가에 시체가 즐비하고, 식인 행위와 폭력이 난무했다.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1670년, 인구의 10분의 1이 몰살되는 참혹한 대재앙, ‘경신 대기근’이 한반도를 덮쳤다. 극심한 가뭄으로 파종 시기를 놓쳤고 우박과 서리가 계속돼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기근의 전조가 예고되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는 폭우가 되어 집, 가축, 식량이 물에 잠겼고 태풍과 지진이 전국을 차례로 휩쓸면서 조선 전역이 초토화되었다. 설상 가상으로 역병이 퍼지면서 길거리에 굶고 병들어 죽은 시체들이 즐비했고,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시체의 옷을 벗겨 입거나 인육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한다. “목숨을 잃은 재앙이 전쟁보다 심하여 백만 목숨이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으니 실로 수 백 년 이래에 없던 재난이었다.” 조선 왕조 실록의 기록이다. 임진년을 경험한 어른들은 “임진왜란도 이렇게까지 참담하지 않았다”며 통탄했다고 한다.
질병과 기근으로 경제가 마비되고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인류 역사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생육과 번성을 파괴하려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늘 있었고, 인류의 문명은 이 위기에 대응하는 연구와 개발을 통해 발전되어왔다. 박테리아의 공격에 맞서 항생제가 등장했고 바이러스의 출현은 백신 개발을 촉진시켰다. 이에 대항하듯 다양하게 변이되며 포위망을 벗어나는 바이러스… 그러자 몸 전체의 면역력을 강화함으로써 바이러스에 대한 보호장벽을 구축하는 인간 사회… 수면 위의 전투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졌지만 수면 아래 작전 본부에서는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 사이의 두뇌전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17세기 재앙을 거치며 완전히 무너져 내린 듯한 유럽에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도약이 일어나고, 대기근으로 몰락한 듯한 조선 땅이 영정조의 중흥기로 다시 꽃을 피운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며, 인류가 만난 많은 위기는 성장의 기회였다고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버린 세상… 잠시 어려움과 혼란이 있지만, 덕분에 일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필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분된다. 삶의 거품이 빠지고 사각지대가 드러난다. 알면서도 쉽지 않았던 생활 방식의 변화를 시도해 봄직하다. 집중 혹은 절제가 필요한 삶의 영역을 재점검할 기회이다. 그리고 모두가 힘든 이 때, 나 하나의 안전을 위해 허둥거리기 보다 대의를 위해 폭풍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용기들이 눈길을 끈다. 코로나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수고와 자기를 비워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바이러스의 소동에도 아랑곳 없이 봄은 이미 성큼 다가와 생기와 따스함을 귀에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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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리 (선교사, 버클리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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