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형기자의 과학 아는 엄마 기자
한국에선 16일로 예정된 아이의 초등학교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고민이다. 학교에 가던 것처럼 등교 시간에 맞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건지, 기존처럼 수업과 쉬는 시간을 번갈아 진행하는 건지, 그냥 이미 녹화돼 있는 동영상만 보면 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학교 교무실로 전화 걸었다.
수화기 너머 교사는 오히려 학부모인 내게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정부가 온라인 개학만 덜컥 발표한 채 구체적인 수업 방법은 각급 학교에 알아서 하라고 그냥 던져 놓았다”며 목소리를 높인 교사는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모여 하루 종일 회의를 해도 답이 안 나온다”고 토로했다.
중·고등학교와 달리 초등학교는 학년별 학력 차이도 커 교사들의 고민이 더욱 깊다. 1학년은 학교가 처음인 데다 한글도 잘 모르는데, 6학년은 문서 작성에 동영상 시청까지 척척 한다. 쌍방향 실시간 수업을 하자니 1학년 학급은 ‘멘붕’이 올 테고, 녹화된 영상만 보여주자니 6학년에겐 ‘헐렁한’ 수업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온라인 수업의 주요 도구가 될 학습관리시스템인 ‘e학습터’와 ‘EBS 온라인클래스’도 아직 불안하다. 교사들이 올려놓은 자료가 갑자기 사라지는가 하면, 접속자가 몰릴 땐 로그인이 제대로 안 되기도 했다. 지난 9일 중·고교 3학년이 먼저 온라인 개학을 했지만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 자처해왔던 게 무색할 만큼 교육 현장의 IT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함을 실감하고 있다.
사교육 시장 한편에선 공교육의 혼란을 비웃으며 보란 듯이 온라인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될 때쯤 이미 수업 방식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온라인에 공개돼 있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인터넷 접속 여건이 안 되는 수강생만 방역을 마친 교실에서 수업에 참여하는 식이다.
강사와 친구들은 화면으로만 보이고, 방 안에서 맨발에 잠옷바지 차림으로 강의를 듣는 게 어색했는지 초기에는 아이가 온라인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새로운 수업 방식에 적응해갔다. 화면으로 강사와 눈을 맞추며 질문하는 데도 익숙해졌고, 팀을 짜 발표 자료를 만들 때는 인터넷 검색과 채팅 창까지 동시에 띄워가며 속도를 냈다. 요즘 아이는 “발표 준비하는 건 교실보다 온라인 수업이 오히려 더 편하고 빠른 것 같다”며 재미있어 한다. 미래에는 일상이 될지 모를 원격 수업을 미리 경험해보고 있는 셈이다.
교육 현장은 첨단 기술 도입이 가장 느린 곳으로 꼽힌다. 기업에선 전자결제가 자리잡은 지 오래고 도로에는 머잖아 자율주행차가 다닐 마당에, 학교에서 배포하는 인쇄물 형태의 가정통신문은 지난해에야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교 홈페이지는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방과후학교 수강 신청은 최근까지도 보호자 서명이 적힌 종이를 담임에게 제출해야 했다.
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추진해온 정부의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마저 한계를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초·중등 소프트웨어교육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공교육 현장에는 정보교육을 담당할 교사는 물론 기본적인 인프라마저 부족하다. 전국 중학교에 배치된 정보과목 교원 수는 학교당 0.4명에 불과했고, 사용연한 5년이 넘은 노후 컴퓨터(PC)를 보유한 초등학교가 전체의 24%나 됐다. 인재 양성에 속도가 날 리 없다.
초·중·고교 학생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태어났을 때부터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있던 덕에 디지털 세상에 익숙하다. 아무 전자기기나 쥐어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 알던 것처럼 척척 사용한다. 아령만한 시티폰에 열광하고 삐삐 음성 확인하려고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 섰던 부모 세대 눈엔 신기해 보일지 모르지만,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겐 당연한 현상이다.
갑작스런 온라인 개학으로 지금까지 우리 공교육이 얼마나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학교에 온라인 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제대로 갖춰 놓는다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거뜬히 적응할 터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틀에 박힌 탑다운식 소프트웨어 교육보다 4차 산업혁명에 더 빨리 접근할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초유의 온라인 개학일에 하루 휴가를 내려 한다. 온라인 수업이 당분간 계속될 테지만, 첫날 아이와 함께 따라 해보는 것 말고 뾰족한 대책은 없다. 아이의 디지털 네이티브 본성을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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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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