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2020년형 세단으로 자동차를 바꿨다. 쓰던 차가 2만 마일 정도 달린 거의 새 차이지만 차 나이가 4년이 되어서이다. 주위에서 손해를 보았다고 했고 심지어 누구는 미쳤다고 까지 했다. 그러나 2020년형을 보니 앞이나 뒤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경고음이 울리고 또 급정거까지 해 준다. 또 차선을 잘못 바꾸면 핸들에 신호가 오는 등 새로운 안전장치로 성능이 많이 향상되었다. 가끔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액셀레이터를 밟아 급발진으로 인한 인명사고가 난 기사를 종종 읽었다. 그래서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차를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새 차를 산 것이 아니고 3년 리스(Lease)를 했다. 3년 후에 어떤 차가 나올까? 아마도 차가 혼자 목적지까지 가는, 소위 운전수 없는 차가 나오고 휘발유를 쓰는 차보다 수소차가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나는 일자 파킹 실력이 형편없는데 리모트 컨트롤로 주차시키는 차도 나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2020년형 차도 3년 후면 또 구식 차가 될 터이다.
차 리스 계약에 서명을 하고 새 차를 인수하여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당시 생각했던 것이 새삼스럽다.
“이제 우리는 인간에서 신의 경지로 들어가는 중이야. 신과 인간의 차이는 무어야. 그야 신은 불멸이고 인간은 죽는 것이지. 무엇으로 대부분 죽지? 그야 대부분 암, 심장병, 고혈압인가? 그러면 언젠가 인간의 피 속에 특수 세포를 넣어 암 세포가 나타나면 잡아먹게 하고, 심장은 기계로 만들어 바꾸어 달고, 혈관은 아예 특수 플라스틱으로 바꿔 버리는 정도의 기술로 반인간 반기계가 되어 신의 경지 즉 불멸의 경지에 인간들이 살겠지.”
그러한 생각에 젖어있는 나에게 코로나19라는 천지개벽이랄까 벼락이 떨어졌다. 인간들에게 인간은 불멸의 신의 경지가 아니라 노화, 질병, 죽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생명체이자 동물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또 상기하라는 벼락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나도 요즈음 누구나처럼 방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그러자니 자연 무심코 읽었던 책이나 기사들을 뒤적거린다. 2010년 통계를 보니 지구상에서 인간의 활동영역인 기계발달로 식량증산이 이루어져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 이제는 100만 명 미만이란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 과체중으로 죽은 숫자가 300만이라고 한다. 사실 너무 많이 먹어서 당뇨로 죽은 숫자를 계산하면 훨씬 더할 것이다.
심리적 공황 병적 문제를 정신세계의 정신병으로 대하지 않고 생물학적으로 해석하여 약물로 치료를 하는 것이 대세이다. 결과는? 약물효과로 정신병 환자가 줄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2010년 정신 피폐로 자살한 자가 80만 명이다. 또 21세기에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12만 명. 그러나 폭발하는 분노로 이어지는 폭력으로 죽은 사람은 60만 명이다.
다시 말해서 괴롭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은 과학의 발달로 신의 경지에 들어가기는커녕 문명의 발달은 득보다 부작용을 불러오는 것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는 것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정신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현실은 이렇게 분수 모르게 날뛰던 인간에게 오늘날에 불어닥친 이 바이러스 재앙은 신의 경지에 왔다고 자만하던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엄청난 재앙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두렵다.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숫자의 환자와 사망자가 나올 것 같다. 그리고 언제고 끝이야 나겠지만 오랜 동안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이 무척 가난해질 것 같다. 그러면서 엄청난 인류역사에 대변혁이 일어날 것 같다. 기관차, 자동차, 비행기로부터 인터넷, 셀폰까지 인간의 기계문명의 출현 시 발생했던 사회의 변화와는 차원이 다른 정신세계까지 대 변화를 가져올 세상이 올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 각자가 각자의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살 것이다. 그러니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노년층의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외로움과 무관심의 세계로 떨어지는 달라진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사람끼리 접촉도, 모임도, 문화 체육 같은 행사도 분명 과거와 같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다.
뒤늦게나마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난리 통에 집에 잡혀 있으면서 일상(日常), 평범(平凡), 대중(大衆)이란 단어가 얼마나 귀중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이 순간 잠시라도 마음이 평안해지고 싶다. 평범한 대중 속에서 일상의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살았던 아름다웠던 과거를 되씹으며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래 홧띠(Amore Fati)’ 트로트를 듣고 있다.
‘좋든지 나쁘든지 좌우간 너에게 닥쳐온 운명을 불평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철학자 니체가 한 이 말이 좀 이상하게 변했지만 나는 이제 따지지 않는다. 다만 이 트로트 박자에 어깨를 들먹일 뿐이다. ‘트로트가 어때서’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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