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직결되는 ‘집에 머물기’ 행정명령에 순응하다 보니 혼자 놀기의 달인이 돼가는 중이다. 혼자 일하고 혼자 쉬고 혼자 논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사회적 고립이 될성 싶어 카톡 안부 묻기를 하기로 했다. “잘 지내세요...”로 시작해 “...건강하세요”로 끝나는 세줄 짜리 문장을 들여다보니 한심하다. 안부를 묻는 게 아니라 당부를 한다. 지금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그렇다고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혼자 뭐하세요?”라는 다소 사적인 물음을 던지니 짐작가능한 대답이 돌아온다. 하루 2만보 걷기, 책 주문해서 읽기, 그리고 가장 많은 답변인 ‘몰아보기’(Binge-watching). 각기 다른 개인의 취향이 전해져왔다.
한꺼번에 몰아보는 시청 방식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나오면서 더 편리해졌다. 옛날처럼 비디오 가게에 가서 광고 없이 재편집한 테입 8개를 빌려올 필요도 없고 동영상 사이트에서 결제하고 클릭하는 수고도 필요 없다. 넷플릭스나 비키 같은 OTT(Over The Top) 플랫폼들이 알아서 몰아보기를 해준다. 심지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은 출시할 때 아예 시즌 하나를 통째로 볼 수 있게 한다. 한 에피소드가 끝나면 다음 에피소드로 자동 재생시켜주는 OTT 플랫폼의 치명적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전략이다.
혼자서 몰아보기를 하면 재미를 극대화시킨 콘텐츠가 뇌신경을 흥분시켜 ‘여기까지만 봐야지’가 잘 안된다. 16부작 드라마는 그나마 다행이다. 시즌 6을 이어가며 50부작이 훌쩍 넘는 시리즈물은 이제 그만 볼까 하다가도 다음 회가 재생되는 순간 주저앉게 된다. 폭음, 폭식(Binge)에 시청(watching)을 갖다붙이니 TV 앞에서 흥청망청하기가 절로 되는 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TV를 보느라 움직이지 않은채로 장시간 앉아 있다보니 폐활량이 1/3로 줄어들어 산소 부족 현상이 느껴진다. 심장혈관에도 무리가 가서 심장병이나 뇌졸중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자세가 좋지 않으니 척추가 구부러지며 약해지고 허리둘레는 커진다. 안전한 집에서 방심한 채 몰아보기를 하다 켜지는 건강의 적신호다. 최악은 자발적인 사회적 고립이 우울증과 불안을 고조시키고 디지털 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로 인해 숙면이 방해를 받는 부정적 영향이다. 그럼에도 넷플릭스 설문조사의 결과는 가입자 73%가 몰아보기의 즐거움을 가입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이 잠정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TV나 스마트폰으로 신작 영화나 시리즈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청이 가능해지면서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범주는 스마트폰 사용자 즉 모바일 시청자를 포함하는 홈·모바일 엔터테인먼트로 확대되었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발간하는 극장·홈엔터테인먼트 시장동향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홈·모바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디지털 시장 점유율은 56%를 넘어섰다.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OTT 서비스)의 시장 지배력 확대와 소비자의 시청 행태 변화 및 기술 혁신이 급속화되다 보니 영화산업은 물론 방송시장의 구조개편이 한창이다.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가 지배하던 OTT 플랫폼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입한 메이저 영화사와 방송사들이 통신사, 플랫폼 업체들과의 대규모 합병 및 인수로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다. 6대 메이저 영화사로 구성된 MPAA에 새로운 회원으로 가입한 넷플릭스가 초래한 영화산업의 지각변동이 미디어 빅뱅을 야기한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Disney+)를 출시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20세기 폭스를 합병하고 스트리밍업체 훌루의 경영권을 손에 쥐었다. 워너 브라더스는 AT&T가 타임워너를 인수해 출범시킨 워너미디어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오는 5월 OTT플랫폼 ‘HBO 맥스’(HBO Max)를 론칭한다. NBC유니버설은 OTT플랫폼 ‘피콕’(Peacock)을,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모회사인 비아콤CBS는 기존의 플랫폼 ‘CBS올액세스’(CBS Allaccess)를 재정비 중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이 가져다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 이해, 행위 등에 영향을 미친다. 닐슨(Neilson)의 연구결과는 비디오 소비가 앞으로 몇 달 내 60% 급증할 수 있으며, 새롭게 개편된 미디어 환경이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코로나19 사태를 전후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문화에 유통되는 양식은 과연 어떻게 변할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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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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