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인가. 집 앞 문을 열고 바깥 세상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멀리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보였다. 길가에 핀 여린 봄 꽃의 움트임과 나뭇가지에 낮게 걸린 구름을 바라보던 사이, 그들은 어느새 길을 건너 다른 공간의 영역으로 스며들어 갔다. 나를 제외한 타인들과의 거리를 확보하며, 그렇게 내가 숨쉬는 공기가 나의 영역을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잠시 머물고 있는 공간에 소유권이라도 얻은듯 멈춰서 꽃에게 구름에게 마음이 건너간 나를 그들이 건너간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건널목들이 나를, 우리를 건너게 한다.
모퉁이를 돌자 나이테가 굵은 나무들이 서 있다. 평상시에 잘 걷지 않던 길을 걷자, 보이지 않던 것들에 눈이 열린다. 나무는 나무로만 있지 않고 그 안에 수액이 나선을 타고 돌고 줄기를 타고 오르는 또 하나의 생명체로 있다. 몇해 전 찾았던 훈데르트 바서(Hundertwasser)의 전시회 작품들 속에서 보았던 화려한 색감의 나선들이 뇌리에 스치며 이내 나무와 합체되어 갔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이며 예술가였던 그는 여러 선 중에 직선은 ‘신의 부재’라고 평가하며 특히 나선을 좋아했다고 한다. 나무의 거친 표면과 딱딱한 등껍질에 숨어 있는 물 길들. 그들은 고목을 살아있게하고, 바로 그 순간에도 살리고 있었다. 뿌리에서부터 이제 막 잎을 터트리려는 여린 나무잎 끝에까지 수액을 나르며.
살아 있는 동안 한 몸인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뿌리는 평생 뿌리의 역할을 하며, 가지는 가지의 역할을, 잎새와 꽃 또한 그들만의 역할을 수행하며. 뿌리는 꽃을 피울 수 없고 꽃은 뿌리로 살 수 없듯 각자 삶의 영역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허락된 시간만큼 온전히 머문다. 우리는 이 중 그 누구의 역할이 가장 크며 고귀하다고 단정지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에 퍼진 바이러스로 인해 누군가의 아픈 몸에 수액을 달아주고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이들의 모습은 온전한 뿌리의 헌신으로 다가오며, 꽃과 잎들은 그들의 희생에 대한 댓가를 누리는 수혜자들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아니 진짜 수혜자는 아무 댓가 없이 자연 속의 그들을 바라보며 개인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위로받고자 하는 인간 개인이다’,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일은 지금 최전선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로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의료진들이다’라고. 이러한 질문들은 경건함과 감사의 마음과 함께 또한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나’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케한다.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역할과 영역이 있다. 때론 그들의 역활과 영역이 다른이들과의 교집합으로 접점을 갖기도 하고, 그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나거나 불협화음을 내기도, 서로의 영역 탈환을 위해 맞서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올바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 우리의 삶은 균형을 유지하는 일상의 세계에 더욱 가까워지리라. 반면, 전 지구촌이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할 시기에 또 하나의 커다란 위험은 사람들의 불안을 복제하며 실어나르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의 심리 바이러스이다. 당장 사회적 침체는 실업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학업의 혼란, 체류 신분 상 문제 등 여러 어려움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맹목적 불안에서 이를 구별하는 분별의 눈을 열어야 한다. 길 모퉁이 고목은 살아 있지만 때론 죽어 있는 듯 고요히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다. 그는 말없이 수많은 나선형 길을 만들고 수액을 나르며 쉼 없이 새 잎과 새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신께 드리는 기도의 응답은 멀리 있지 않고 어쩌면 저 나무를 통해 길을 보여주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지금 멈춰서 보이는 듯한 이 시간도 치유의 길로 가는 과정이며 이 길의 끝은 새 꽃을 피우게 될 것임을 믿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나’의 자리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 정성을 다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4월 1일 만우절에 새 꽃잎을 피우 듯 거짓말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에서 ‘구름빵’ , ‘달 샤베트’ 등 베스트 셀러 그림책을 집필한 백희나 작가가 세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상은 ‘삐삐 롱스타킹’을 집필한 세계적인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리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제정한 상으로 스웨덴 시간으로 3월 마지막 날 발표되었다. 어린시절 가장 좋아했던 드라마 중 하나로 만들어져 TV에 방영되었던 ”말괄량이 삐삐’는 서로 색깔이 달랐던 롱스타킹을 신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신있고 따뜻하며 거침없던 캐릭터의 모습으로 뇌리에 선명하다. 한국작가로는 최초이기에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상은 세계 아동문학계에 기여한 실력있는 작가에게 주는 매우 권위있는 상이다. 버락 오바바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백악관에서 열린 연례 부활절 행사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던 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쓴 모리스 센댁도 2003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했다.
나무 위로, 그리고 가지 위로 구름이 머물다 흐른다. 그림책 속 ‘구름빵’ 처럼 나뭇가지 위에 걸린 구름을 따다 구워 구름빵을 만들어 먹고, 구름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하늘을 날아 갈 수 있다면... 바쁜 나머지 아침 식사를 거르고, 비오는 날 만원버스에 발이 묶인 아빠에게 구름빵을 전하러 가는 동화속 이야기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도움의 손길들이 서로 맞닿아 구름처럼 가볍게 그들의 일상을 되돌리는 바퀴가 되었다던 이야기로 ‘구름빵 그 후 이야기’가 먼 훗날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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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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