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 지냈던 친구 손인식 목사, 내가 당신 친구중에 하나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 너무 수고많았다”고 밝힌 김충렬 목사는 “그동안 온 세계에 수많은 여호수아들을 양육해 놓았으니, 모세같은 친구여, 우리가 나머지를 분담해 담당할테니 안심하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즐겁게 지내시게, 시 유 댓 데이,언틸 댓 데이!”라며 손인식 목사와의 지상에서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지난 3월28일, 72세의 나이에 별세한 손인식(사진) 전 베델교회 담임목사는 남가주는 물론 미 동부와 한국에서도 지명도가 높았던 목회자로 오렌지카운티의 대표적 대형 한인교회의 하나인 어바인 베델교회를 부흥시킨 뒤 지난 2013년 말 담임목사 직을 물려주고 아름다운 은퇴를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은퇴후에도 북한 사역을 위한 선교단체 ‘그날까지 선교연합’의 대표를 맡아 활발하게 활동해오다, 지난 해 11월4일 자택에서 쓰러져 뇌출혈을 일으킨 뒤 투병해오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28일 별세했다.
손 목사는 지난 1948년 12월30일 부친 손원국 장로와 모친 김화비 권사의 2남5녀중 차남으로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대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고려대학교 재학중 군 복무를 마친 후 워싱턴 DC로 도미후에 워싱턴 바이블 칼리지와 캐피털 바이블 세미너리를 졸업했다. 이후 워싱턴 침례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한 그는 볼티모어 베델교회 김상복 목사(현 할렐루야 교회 원로목사) 밑에서 부목사로 훈련을 받은 후 디트로이트 침례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재직했다. 1990년 11월, 42세의 나이에 베델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23년간 교회를 섬기면서 당시 100여명이 채 되지 않았던 교회를 남가주를 대표하는 대형 교회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켰다.
베델교회 3대 담임 목사로 취임하여 한 영혼도 소홀하지 않고 품는 따뜻한 목자의 마음으로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뜨거운 개혁가의 심정으로 23년을 한결같이 목회하며 베델교회를 출석교인만 5,500여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시키는 초석을 닦았다.
손 목사는 2013년 12월말 65세 정년을 맞아 은퇴하고, 선교사로 활동했다. 특히 북한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탈북자 사역에 열심을 다 하였고 쓰러지기 전까지도 북한의 복음화를 위한 “그날까지 선교 연합” 대표로 활발히 활동했다.
손인식 목사는 자신이 피나민 가정에서 태어난 배경으로 인해 북한의 복음화에 관심이 많았다. 세계와 차단된 채 살아가고 있는 2,200만 북한 동포를 돕는 사역을 은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는 KCC(KOREAN CHURCH COALITION for North Korea Freedom, 북한 자유를 위한 한인교회연합)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KCC는 북한포럼과 통곡기도회, 탈북자 강제북송반대 집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2015년 10월에는 선교연합이 주최하는 ‘분단 70주년 LA 통곡 기도대회’를 LA 다운타운 주님의 영광교회에서 열기도 했다. 이 기도대회에서 1,500명의 LA지역 한인기독교인들과 이웃이 모여 함께 눈물의 기도를 했으며 2015년을 통일의 해로 선포하고 복음선교의 물결이 북녘에 함께하기를 강구했다.
또한 워싱턴 DC 백악관 앞 광장에서 기도회를 열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탈북자와 북한 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촉구했으며 중국 대사관 앞에서 기도집회를 열고 탈북자 강제 북송에 항의해 왔다.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과 수전 솔티 디펜스포럼 회장, 한국의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과 박선영 전 국회의원 등이 손인식 목사와 함께 활동할 정도로 국내외 정치계 인사들과 교유의 폭이 넓었다.
그는 북한을 위한 통곡기도회를 주최하는 가운데 북한 방문 제의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또한 “북한 동포를 위한 기도의 불길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믿었다. 특히 그는 한인 2세들에게 거는 기대가 많았으며 2세들이 부모의 나라 동포 가운데 고난 받는 자, 소리내지 못하는 자를 위해 소리내야 한다는 열정이 있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한인 2세들은 손 목사가 주최하는 통곡 기도회에 참석해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북한 주민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자들의 실태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의 이민 교회 역할론은 이민자적 마이너리티 교회에서 벗어나 미 주류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정학적 개념의 디아스포라의 ‘신학적’ 정의보다 이민교회의 ‘신앙적’ 순수성을 강조해왔다. 이민 신학에 대한 그의 견해도 확고했다. 복음 안에서 복음으로 통일되는 한반도의 ‘통일신학’을 이민신학의 범주 안에 포함시켰다.
그는 베델한인교회에서 은퇴하는 목회자로서 보람을 지난 2013년 12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강하다. 위로가 필요했던 사람,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그 어떤 동기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십자가와 예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로 변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용사로 변한다. 그런 신앙적 용기가 있는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는 보람이 목회자로서 너무 감격스럽다. 그동안 함께 동역한 사역자들과 교회 임직자, 성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물러났다.
그는 ‘얼바인에서 들려오는 돌탕복음’, ‘부흥하는 교회는 이런 교회입니다’,‘이런 교회가 잘되는 교회입니다’ 등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얼바인에서 들려오는 돌탕복음’을 통해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특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낙심하여 탕자가 되어 있는 심령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다시금 주님을 만나 참 회개하며 돌아와 아버지를 만나 품에 안기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승옥 사모와 아들 세진, 딸 수진씨와 3명의 손자, 1명의 손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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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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