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가끔 악마가 나타나 굿판을 벌인다. 보통 굿이 아니라 싹쓸이 굿판으로 불릴 만큼 충격이 대단하다. 과거에는 ‘흑사병’이나 ‘풍토병’이란 굿판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사스’나 ‘메르스’, ‘코로나19’의 바이러스가 도깨비 굿판을 벌여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있다.
이들 악마 바이러스는 무차별로 괴질을 퍼뜨려 인류를 벌벌 떨게 만들고,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의 악명을 떨치고 있다. 또한, 착한 사람이나 의료진의 목숨까지 막무가내로 굿판의 제물로 바치도록 강요한다. 인간은 그들 앞에 작고 구부러진 그림자를 드리우며 쩔쩔매고 있는 형국이다.
16세기 중남미의 아즈텍 왕국과 잉카 제국은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에 국가가 무너졌다. 스페인의 군인들이 휘두른 신식무기보다는 전염병을 앞세운 침략작전이 원주민을 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보고 있다. 원주민들은 처음 접하는 괴질에 면역력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악마 바이러스도 인류의 면역 사각지대나 틈바구니를 귀신같이 파고들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악마는 인간과 싸움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쓰나미처럼 인류를 얽어매어 나락의 늪에 빠뜨린다. 그들이 영역을 키울수록 지구 곳곳은 폭탄 맞은 자국같이 폐허의 웅덩이로 변해간다. 앞으로는 지구를 아예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지식으로 밝히기 어려운 우주의 신비, 여러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인류가 둥지를 튼 지 아주 오래다. 우주와 만물의 질서를 다스리고 있다는 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왜 악마들이 지구에서 밤낮으로 설치고 있고, 왜 그들에게 활동공간을 제공하고 있는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악마의 위협에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이다.
인류에게 닥친 악마의 굿판이란 고통은 언제까지 지속할런지, 언제 또 다시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와 섬뜩하게 할지 알 수가 없다. 현대 컴퓨터 과학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려 연구를 거듭해도, 아직 악마 바이러스에 대해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도깨비 탈을 쓴 악마의 가면을 벗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악마의 싹쓸이 굿판이 참혹한 상처를 남기고 지나간다 해도 다음 언젠가 그들이 다시 홀연히 나타날 때, 지구는 또다시 굿판의 멍석을 깔아야 한다. 악마의 굿판이 휩쓸고 갈 때마다 인간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도려내는 듯하다. 그들의 횡포를 아예 발붙일 수 없게 하거나, 바로 퇴치할 수 있는 대책이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에게서 값비싼 고초를 겪고도 교훈이나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있다. 매번 악마가 가리키는 손끝만 바라보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의 달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나 할까.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하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집착하고 있는 셈이다. 도깨비 가면에 뿔이 있느니 없느니, 또는 손가락에 털이 많으니 적으니, 이런 쭉정이 말들만 주고받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 슬금슬금 곰팡이가 번지고 좀 먹어가고 있는 세상은 더욱 무서운 줄 모른다. 악마들이 바이러스를 내세워 굿판을 끝내기도 전에, 인간은 잠시 잊었던 오만을 되찾기 바쁘고, 눈앞의 돈다발이나 셀 궁리나 하면서 빨리 폭풍우만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지나 않을까.
악마의 굿판은 하늘이 보낸 사자일 수 있다. 인간에게 경고하려고 일부러 보냈는지 모른다. 신은 천사만 가까이 두지 않는다. 필요할 때는 악마를 인간 세상에 보낸다. 인간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거나 황금 만능주의에 대한 벌(罰)일 수도 있다. 하늘의 섭리는 깊고 오묘하여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한다. 과학과 자연탐구 등으로 풀어보려는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일 수 있다. 악마의 바이러스는 결국 인간에 의해 정복될 날이 올까. 아니면 반대로 인류가 멸망하는 날이 올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같이 살고 죽는 길을 택하면서 싫든 좋든 함께 갈까.
악마의 굿판이 태양계나 행성의 유한성과 아울러 인류의 한계까지 보여주는 계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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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원 /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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