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3 때 4개월 간 매일 숨죽이며 새끼 두 마리 성장 과정 지켜봐
▶ 고교 때‘도시소년$’책 출간도…유튜브‘새덕후 Korean Birder’
철새 소개하고 보호에도 앞장 “BBC처럼 멋진 다큐 만들래요”
김어진씨가 지난해 6월 비무장지대(DMZ)에서 새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조정하고 있다.[김어진씨 제공]
‘탐조생활’유튜버 김어진 씨,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5년 부모의 권유로 우연히 환경연합이 주최한 탐조(새의 서식지를 찾아 생태를 관찰하는 일)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새를 향한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국경이나 이념 따윈 상관없이 웅장한 모습으로 비무장지대(DMZ)인 파주 장단반도 상공을 비행하는 독수리의 모습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고 한다.
요즘은 일과가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여러 철새 서식지를 돌며 탐조를 하면서 이를 유튜브 방송으로 만드는 일이다. 탐조생활이 크게 활성화된 미국(약5,000만명), 영국(약100만명) 등과 비교해 보잘것없을 정도로 탐조인구가 적은 국내(약 1만명 이하 추정)에서 요즘 돋보이는 새 마니아 김어진(23ㆍ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2학년 휴학 중)씨 이야기다.
김어진씨가 지난달 19일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문촌마을내공원에서 우유갑을 활용한 겨울철새먹이주기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김어진씨 제공]
새와 짝사랑은 진행형… 휴학까지 불사
김씨는 쌍안경과 아버지가 사다 주신 카메라를 들고 탐조 프로그램에서 만난 회원들과 삼삼오오 한강하구 서식지를 찾아 새를 관찰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꾸준히 탐조에 나선 수십 명 회원 중 어린이는 그가 유일했다. “초중고교 과정을 대안학교(파주자유학교)에서 마치다 보니 또래보다 좀 더 뛰어놀 시간이 많았나 봐요.”
2008년 중학생이 되면서는 슬슬 혼자 탐조를 다니기 시작했다. 경기 고양시 집을 나서 버스 등을 이용해 한강하구 습지보호구역인 파주 공릉천과 돌곶이 습지까지 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새를 찾았다. 2010년 중3 때는 반나절씩 걸어 공릉천 하구를 매일 한 바퀴씩 돌고 집으로 돌아갔다. 화장실조차 편히 갈 수 없고, 이름 모를 날벌레들은 덤벼들었다. 게다가 용돈이 떨어진 날은 목이 마르고 배도 고팠지만 마냥 좋았다. “지금 하라면 힘들어 못할 것 같은데, 그땐 괜찮았어요. 부모님께서도 걱정은 안 하셨어요. 다른 집에선 이럴 때 걱정하나요?(웃음)”
당시 수리부엉이 두 마리가 새끼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4개월간 성장과정 전체를 매일 숨죽이며 지켜봐서인지 수리부엉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새 중 하나가 됐다. 우연히 TV에서 본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 근처 바위절벽이 수리부엉이 서식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 여정이었다. 어미가 알을 품고 있을 때 둥지에 접근하면 위협을 느끼고, 새끼를 포기한 채 둥지를 떠날 수 있어 새끼가 좀 자랄 때까지 기다리다 관찰에 들어갔다. “새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해요. 새를 단순히 관찰하든 사진ㆍ비디오 촬영을 하든 큰 소리를 내거나 너무 가까이 가 그들이 스트레스받게 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탐조예절을 어기는 일이죠.”
이런 내용을 모아 그는 고교 2학년이던 2012년 4월 ‘도시소년이 사랑한 우리 새 이야기’라는 제목의 아동도서를 냈다. 도심 공원에서 홀로 솔부엉이를 관찰하다 길 가던 어른에게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핀잔을 듣고도, 남부지방에서 주로 보이는 희귀조류인 긴꼬리딱새를 발견해 크게 기뻐하던 이야기 등이 책에 담겼다. 책은 김씨가 홀로 공릉천에서 탐조를 하다 산책을 나온 한 출판사 대표와 아주 우연히 만난 결과물이었다. 김씨가 온라인에 연재 중인 탐조활동 관련 글을 평소 즐겨보던 출판사 대표가 눈 내리던 날 산책을 하다 위장막 속에서 새를 관찰하던 그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 즉석에서 출판이 결정됐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에서 10개월간 교환학기를 보냈어요. 떠나기 직전 출판제의가 들어와 미국에 있는 동안 책이 나왔죠.”
그는 2014년 대학입학 후에는 대학연합 야생조류연구회에서 활동하며 매년 한강ㆍ금강ㆍ낙동강 하구 등의 철새도래지에서 철새 품종과 개체 수 등을 조사해 보고서를 냈다. 김씨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물새가 많이 서식하는 낙동강 하구는 조사 때마다 목격되는 종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라며 “가장 큰 원인은 개발에 따른 서식지 파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0년 김어진씨가 4개월간 매일 관찰한 수리부엉이 2마리 중 하나가 성체가 돼 날갯짓을 연습하고 있다.[김어진씨 제공]
인간과 새가 공존하는 세상
그의 새 마니아 인생에서 탐조와 함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버드 피딩’(Bird feeding)은 미국 교환학기 시절 처음 접했다. 집 주변에 서식하는 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버드 피딩은 미국의 경우 대형 할인 마트에 관련 코너가 마련돼 있을 정도이지만, 국내에선 새모이 주기가 이웃에 불편을 끼치는 행동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 생소하다.
김씨는 춥고 먹을 게 부족한 야생의 겨울에는 새들이 보다 많이 생존하기 위해선 버드 피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무의 마지막 열매를 남겨놓던 ‘까치밥’도 사실상 버드 피딩의 한 종류인 만큼 우리에게 완전히 생소한 일도 아니다. “발코니 창틀에 먹이를 담은 우유갑이나 접시 같은 것만 놓아도 버드 피딩이 됩니다. 단 새들은 경계심이 많은 만큼 먹이를 놓고도 2~4주 정도 기다려줘야 하는 점만 유의하세요.”
그가 탐조인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 초 유튜브 채널 ‘새덕후 Korean Birder’(코리안 버더)를 개설하면서다. 김씨는 본인 채널에서 계절마다 볼 수 있는 철새 소개는 물론 ‘새 관찰을 위한 조심스러운 접근 방법’과 ‘새에게 가장 위협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인 유리창 충돌 문제’까지 새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그는 “외관이 반사유리인 건축물과 투명방음벽에 충돌해 죽는 새가 국내에서만 한 해 800만 마리나 된다”며 “효과가 없는 맹금류 스티커(버드 세이버) 대신 유리창에 5~10㎝ 간격으로 작은 점들을 찍어주면 효과가 큰 만큼 집에서도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김어진씨가 2012년 새만금에서 직접 찍은 넓적부리도요새 무리. 넓적부리도요의 경우 최근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줄었다.[김어진씨 제공]
그가 요즘 가장 많이 보고 싶으면서도 걱정하는 새는 검은 주걱 모양의 부리가 특징인 멸종위기 1급 ‘넓적부리도요’다. 이 새는 예전엔 봄과 가을 낙동강 하구와 새만금에서 주로 많이 목격됐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 수백 마리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파악될 정도로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몸길이 약 17㎝가량의 자그마한 체구로 추운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지역에서 여름을 나고, 동남아시아나 호주 등지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대략 8,000㎞를 이동한다. 그 와중에 봄(4, 5월)과 가을(9, 10월) 국내에 머물며 체력을 보충할 겸 쉬어가는데, 2000년대 들어 그 수가 90% 이상 급격히 줄더니 최근에는 국내를 찾는 수가 수십 마리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김씨는 “조류 전문가들에 따르면 넓적부리도요의 급감 원인은 낙동강 하구 개발과 새만금 매립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새에 관심을 둘 것을 당부했다. “탐조가 거창한 게 아니에요. 그냥 도심 공원이나 뒷산만 가도 여러 종의 새를 쉽게 볼 수 있거든요.”
김씨는 유튜브 채널 개설이 개인적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새들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꿈을 위해 평생 미디어를 통한 환경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유튜브 방송은 현재 상황에서 제가 가장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중엔 최고 수준의 생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영국 BBC 방송이 인정할 정도의 고품격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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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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