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서 커다란 바윗돌이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쿵!’ 땅 아래로 굴러 떨어진 바윗돌을 다시 산위로 올리는 그의 등에 땀이 흥건하다. 얼마동안 그 일을 해왔었는지 그의 머리는 그것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그는 다시 거대한 바윗돌을 힘겹게 밀어 올린다. 밤이 되고 다시 햇살이 비출 때에도 그리고 다시 어둠이 오는 것을 보면서도 멈출 수 없는 일. 그의 길고도 힘겨운 노동의 시간들은 영겁의 세월 속에 걸쳐 지워진 숙명이었다. 신이 그에게 죽음이라는 끝을 허락하지 않고 영원한 삶을 부여한 동시에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형벌을 주었기에 견뎌내야만 했던 한 사람. ‘시지프스(Sisyphus)’.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신들의 일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제우스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뾰족한 바위산에 거대한 바윗돌을 밀어 올리고, 다시 굴러 떨어지면 끝없이 올리는 일을 반복 해야만 했다. 그는 매 순간 바위를 산위로 올리는 일을 하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러한 시지프를 바라보며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지난해 12월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됨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각국이 자체적인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확진 환자의 이동과 전파 경로를 파악 후 이를 차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국가와 민족간 전쟁을 넘어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는 인류 역사를 통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의료 기술과 백신들이 개발되기 전인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한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의 30~60%를 앗아갔으며, 약 100여년전인 1918년 당시 스페인 독감으로는 약 5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는 제 1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보다 3배 이상 많은 숫자이다. 이 밖에도 2016년 서아프리카에서 발생 하여 치사률이 40%에 달하는 에볼라 바이러스, 지카 바이러스 등 인류는 끊임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윗돌과 같은 난제들을 풀어나가며 다시 바윗돌을 산 정상까지 끌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오늘도 산을 오르고 있다. 하나의 바이러스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연구인력이 투입되어 백신을 개발하고, 그 하나가 정복됨을 선언하듯 산정상에까지 바윗돌을 올리고 나면, 또 다른 바이러스가 발 밑에 굴러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이. 그 끝없는 사투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은 시지프스가 아니라고 그것은 나 이외의 다른 이의 이름이며,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
‘코로나 19’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또 다른 인종차별의 결과를 가져왔다. 아시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장소에서 폭언과 폭행이 가행되고, 호텔 등에서 숙박을 거부당하기도 한다. 공포가 인간의 내면세계를 잠식 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패턴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위협적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자신이 아닌 먼 산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일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또 다른 바윗돌이 산 위에서 굴러 떨어져 그들의 발아래 놓였을 때 그가 그것을 다시 산위로 올려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또 다른 바이러스일지 아니면 혼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또 다른 종류의 난제일지 우리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철학적 에세이인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의 내재적 가치와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과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침묵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당하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의지와 통찰력을 가지고 살아남아 버텨야 한다고. 무한의 시간동안 아무가치도 없어 보이는 바위돌 올리기를 계속해서 반복해야만 했던 시지프에게. “산정상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까뮈는 신의 형벌안에서도 행복한 시지프를 이야기 한다.
2020년 봄이 오는 3월에 지구상에 또 하나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바이러스와 같은 하나의 난제는 시지프스가 그랬듯 언젠가는 산정상에 오르며 해결될 것이다. 비록 그 이후 또 다른 난제가 바윗돌로 그의 발 밑에 떨어질지라도. 제우스 신은 하나의 바윗돌이라 생각했던 그 바위가 시지프스에게는 매번 그가 해결해야 하는 삶 속의 문제들이었으며 그렇기에 그의 여정은 ‘무의미하지 않다’라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니 그의 여정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라고 전하고 싶다. 어쩌면 시지프스는 바윗돌을 산 정상에까지 올리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미끄러짐으로 후퇴와 전진을 반복했을 것이기에. 땀으로 흥건히 젖은 그의 어깨가 나와 당신의 어깨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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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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