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성탄절, 정월 초하루, 밸런타인데이 그리고 결혼기념일인 춘삼월이 다가오지만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다. 수중엔 단돈 몇 십 달러밖에 없다. 자기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쳇바퀴 다람쥐 신세다. 실낱같은 햇살이 조그만 창문사이로 잠시 들어오다 사라지는 지하실 단칸방에 사는 50대 초반 남자의 넋두리다.
중류가정에서 자란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 졸업 후 명문대학에 진학했지만 1학년 첫 학기 시험을 앞두고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혹시 시험성적이 좋지 않게 나와 장학금이 끊어지면 비싼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 최근 사귄 여자 친구에게 줄 실망 등 압박감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본 룸메이트가 마리화나를 건네주었다. 한대 피워보니 정신이 몽롱한 게 편안해지고 근심걱정도 사라져 기분이 좋았다. 마리화나를 계속 피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강의실에 가면 학생들이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 같고, 교수가 강의 도중 손짓하는 게 CIA와 연락해 자기를 잡으러 오게 하는 신호 같았다. 또 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자신이 소련스파이라는 음성도 들렸다. 마리화나 때문일까 하여 끊어 보았으나 증상은 계속 되었다.
대학상담사의 권유로 의료기관에 가서 정신분열증(한국에서는 조현병)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으며 무사히 시험도 마치고 집으로 왔다. 쉬면서 증상이 좋아지자 약물복용을 멈췄다. 학교로 돌아가 5개월쯤 후 다시 심한 피해망상과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적 환청 때문에 말과 행동이 공격적이 되자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 후 치료약을 중단할 때마다 재발하여 두어 번 병원치료를 더 받았지만 다행히 대학을 졸업해 직업도 얻고 결혼도 했다.
문제는 망상, 환청 증상이 사라지면 약을 끊은 것이었다. 어떤 경우는 약 없이 일년 이상 잘 지내다가도 재발이 뒤따라 왔다. 재발할 때마다 기존 중상들이 더 심해지고 치료하는데도 시간이 더 걸렸다. 그 과정에서 주의력, 집중력, 판단력 등의 인지기능도 점점 떨어졌다. 병원을 몇 번 들락거리다 보니 직업도, 가정도, 인간관계도 다 잃게 되어 지금은 정부가 지급하는 생활보조금으로 지하 단칸방에서 소외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정신분열증은 인간의 사고, 감정, 언어, 행동, 인지 등 여러 기능에 이상이 나타내는 정신질환이다. 이런 광범위한 영역을 주관하고 활동을 조절하는 신체장기가 뇌 조직이다. 뇌가 어떤 이유로 손상을 입고 유전적, 환경적 요인과 겹쳐 발생하는 뇌 질환이 정신분열중이다.
대부분의 분열증 환자들은 고분고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 피해망상과 남을 해치라는 명령적 환청을 가진 극소수의 환자들은 큰 사고를 일으킬 위험성도 있다. 급성 기에는 약물치료가 우선이고, 만성 기에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사회적 적응과 인지기술을 높여 주는 재활치료를 함께 한다.
정신분열증은 대체로 발병 전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대부분 사춘기나 이른 성인기에 확실한 증상들이 나타난다. 학교성적이 이유 없이 떨어지거나 사람 만나기 싫어 집에만 있고, 감정조절도 힘들고, 이상한 생각에 빠져들어 종교, 철학 서적에 몰두하는 잠복기간을 보일 때가 많다. 사춘기는 생물학적으로 뇌 세포들 간의 신경회로 연결과 정보교환을 하는 신경전달 물질들의 활동이 매우 왕성하고 심리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방황하는 시기다. 이때 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 유전적 소인, 환경적 스트레스 등이 쌓이면 병이 생긴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타인 보다 자신을 해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통계적으로 분열증 환자의 5-10%는 자살로 생을 마친다. 급성기에는 피해망상과 자기를 죽이라는 환청 때문에 자살하고, 회복기에는 가정과 직장에서 겪는 편견, 오명, 사회적응 능력의 한계로 인한 자책감, 열등감, 죄의식 등 심한 우울증세 때문이다. 그리고 잠복기에는 가족과 친지들이 흔히 사춘기의 성장통 정도로 알고 게으르다거나 의지가 약하다거나 심지어 꾀병을 부린다는 말을 하고 이 때문에 충동적으로 자살했던 틴에이저도 보았다.
위의 환자의 정신증세와 우울증은 항정신제와 항우울제로 조절되었다. 그러나 직업을 가진 정상적 사회인으로서의 생활은 힘들었다. 그의 소망 하나가 시카고 위글리 야구장에서 컵스 경기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당시 밥 한 끼를 굶으며 돈을 모으고 있었고 이후 그와 연락이 끊겨 소망이 이루어졌는지는 모른다. 부디 이루어졌을 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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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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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밑에 분 죄송하지만 조금 더 배우셔야 할것 같습니다. 현대과학의 발달로 여러 정신병 들이 뇌(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다 설명 드릴순 없지만)와 홀몬이상, 그리고 환경요인들이 trigger 가 되어 나타나는것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전먹고 살기 힘들땐 정신병이 없었다고요? 반 고흐를 생각해보세요 03-02-2020 14:27:18 (PST)
옛날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에는 정신분열증, 앨러지, 당뇨병, 동성애 등이 없었다. 당하는 분들에게는 안됐지만 모두 사치병이 아닌가 한다.
난 이 글을 읽으면서 여기 이 글 주인공은 한분 이지만 그 수많은 이들이 가족과함꼐 수많은 날들 고난을 격으며 가난을 공포를 죽음이 무서워 그래도 좀 더 낳은 삶을 꿈꾸며 북으로 북으로 미국을 향해 걸어온 오는 그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걸 아무렇지도않게 동물도 그리 취급 안하는데 사람을 가족을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이 있다는게 이게 말이나 된다고 입을 연다는게 정말 사람이 동물만도 못하구 무섭운 존재구나 하는걸 실감하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