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크 스펙트로닉스 윤석원 회장
▶ 기업가·사회운동가·PCB 이사장 등 역임, 2세들의 바른 역사교육·민간 외교관 역할도
기업가, 사회운동가, 퍼시픽시티뱅크 이사장, LA 글로벌 CEO 초대원우회장 등으로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윤석원 회장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데 민간외교관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가주한미포럼의 대표를 역임하며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앞장서는 활동으로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윤석원(사진) 유니크 스펙트로닉스 회장이 지난 11일 별세했다. 향년 72세.
윤석원 회장은 기업가, 사회운동가, 자원봉사자, 퍼시픽시티뱅크 이사장, LA 글로벌 CEO 초대원우회장 등으로 그 누구보다 역동적인 삶을 살았으며 2014년 식도암 판정을 받으면서 잠시 활동을 쉬었다.
이상영 퍼시틱시티뱅크 이사장은 “윤석원 회장이 식도암 판정을 받은 후 수술과 치료를 통해 회복을 했지만 지난 해 폐에 물이 차면서 한 차례 성공적인 수술을 한 후 한국을 방문했다가 얻은 폐렴의 후유증으로 힘들어했었다”고 밝혔다. 윤석원 회장은 1948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에 입학했다. 곧 해병대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친 후 노스웨스턴 항공사에 1970년 입사한 그는 당시 항공사 직원으로 하와이 이민국 심사국장의 서울 여행 안내를 정성껏 해 준 것이 계기가 돼 그의 이민 초청으로 1975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피스도 없이 자신의 집에서 1983년 회사를 창업한 그는 미국의 우수한 전자부품을 한국, 동남아에 수출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래회사의 부품개발에도 공헌하기위해 가전업계 현황과 최신의 부품정보 등을 제공하면서 시장을 계속 확장하게 됐다. 삼성, LG 등 한국 가전회사는 물론 GE, 월풀, 메이텍 등 주요 기업들의 소재, 원자재, 부품의 연구 개발 및 조달까지 영역을 넓힌 결과 2011년 연방 상무부로부터 ‘대통령 수출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대통령 최우수 수출상’까지 받았다.
또한 지난 2003년 출범한 퍼시픽시티뱅크의 이사로 2005년부터 일했으며 2014년에는 이 은행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한인금융계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이상영 이사장은 “윤 회장이 항상 원리원칙에 근거한 기업경영을 모토로 했고 은행직원들에게도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면서도 인자하게 대했다”고 회고했다.
단순히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그의 생애에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났다.
2007년 7월 일본계 마이크 혼다 의원의 종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를 촉구한 결의안(HR 121) 통과를 앞두고 한인사회가 결집해야 한다는 본보의 기사를 읽게 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원봉사자가 되어서 매 주말마다 청원서를 받기 위해 마켓 앞에서 한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 운동에 나섰다.
이때 연방의회에서 증언차 미국을 방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직접 만나 피맺힌 절규를 들으며 한국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웠고 피가 거꾸로 솟는 울분을 느껴서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마침내 위안부 결의안 H.R.121의 연방하원 통과 후 그는 후속 사업을 생각하던 중 2008년 위안부 기림비 설립 신청을 위한 단체 이름으로 ‘가주한미포럼’을 등록했고, 이후 6년 간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헌신했다.
그 와중에 2008년 2월 한국 외국어대 글로벌 CEO 과정 1기를 수료하고 수료식에서 최우수상 수상자 및 원우회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글로벌 CEO 총원우회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지속적인 공부를 위해 2년간 1기를 중심으로 독서클럽 모임을 조직, 현 리더스 소사이어티의 모체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 건립까지 기획, 섭외, 재정, 허가, 부지 선정, 운송, 설치, 진행 등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챙긴 그는 “평화의 소녀상은 한인들의 염원, 재능 봉사자들의 협조, 가주한미포럼 회원들의 자원봉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노력으로 마침내 2013년 7월30일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마당에 국외 첫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그는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일본계 극우단체가 3년 동안 집요한 소송전을 벌였지만 중국 커뮤니티와 협조해 이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글로벌 CEO 1기 원우 동기로서 오랫동안 윤석원 회장의 활동을 지켜 본 화랑청소년재단 박윤숙 회장은 “윤 회장이 겸손하고 대외적인 홍보에 신경을 쓰지않는 스타일이라 그가 평화의 소녀상을 위해 힘쓴 노력과 희생이 제대로 한인사회에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며 “그의 헌신적인 노력이 소녀상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특히 중학교 2학년 때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지난 1998년 LA에 꽃동네가 문을 여는 데 앞장섰고 오갈 데 없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남가주 지역 린우드와 테메큘라를 시작으로 뉴저지주와 조지아주, 캐나다 토론토, 그리고 아이티 등에도 꽃동네가 세워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2014년초 한국의 위안부 문제에 교황도 관심을 갖고 기도를 해달라는 요청을 이메일로 보낸 적이 있는 데 교황으로부터 같이 기도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으며 그해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 음성 꽃동네를 들렀는데 음성 꽃동네에서 교황을 알현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애에 가장 의미 있었던 일로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한 서명운동에서부터 시작해 소녀상 건립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민간 외교관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라며 죽을 때까지 일본의 진정성있는 사과를 받아내는 일에 힘쓰겠다고 밝혔었다.
그는 당시 “일본 정부로부터 위안부에 대한 공식 사과를 받을 때까지 2세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고 차세대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등 커뮤니티 차원의 풀뿌리 운동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원 회장의 유족으로 부인 윤숙희 씨와 장남 데이빗, 차남 프란시스, 두 명의 손주손녀가 있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오는 19일(수) 오전 9시 애나하임의 성 토마스 성당(412 N. Crescent Way, Anaheim)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연락처 (714)772-3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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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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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힘 이 있으면 자연히 해결 될 일 통일 통일해 알본을 이기고 그들의 배가 아프게 삽시다, 힘씁시다 노력합시다 맘에 없으면 아무일도 할수없는데 통일 말 만 하면 끌어내리기 바쁘고 외면하는 이들이 있는데 통일이 대박 이라는걸 모르지는 아니 할텐데도 왜들 그러는지 도저히 알다가도 모르며 정은이만 욕하며 또다시 70년을 허송세월 미 일 중한테 눈치보며 살 작정인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