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김(58) 판사는 올해로 판사가 된 지 22년이 됐다. 지난 1998년 피트 윌슨 주지사에 의해 지명됐다. 당시 남가주에 한인판사는 그가 유일했다. 한인사회에서는 큰 뉴스였다. 거슬러 올라가도 판사는 고 케네스 장 판사가 80년대 초에 몇 년 재직했던 게 전부였다.
그는 판사로 임용되기 전 8년간은 검사로 일했다. 그때 LA카운티 검사도 한인은 단 두 사람. 나중에 목사가 됐다가 젊은 나이에 타계한 장(이)미나 검사가 유일한 한인동료였다. 그 정도로 한인판사나 검사가 드물었다.
지금은 LA수피리어 코트 판사 450여 명 중에 한인은 12명, 남가주에는 15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제 부부 판사와 주 항소심 판사도 배출됐다. 검사는 더 많이 늘어 LA카운티와 시 검찰의 한인검사가 100여명에 이른다.
18년째 롱비치의 수피리어 법원에서 일하고 있는 김 판사는 주로 형사법정에서 중범 재판을 담당해왔다. 배심원 재판까지 간 케이스가 450여 건, 그중 살인사건이 50여 건이었다. 살인은 갱과 관련된 케이스가 많았다. 사실상 사형제가 시행되지 않고 있는 가주에서는 최고형인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내려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는 많은 범죄가 마약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마약은 절도를 거쳐 흉악범죄로 이어진다. 합법화된 마리화나 흡연을 걱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리화나에서 출발해 더 자극적인 마약으로, 그러다가 다른 범죄로 이어질까 염려하는 것이다. 법원은 마약사범에 대해 처벌보다 교육을 강조하는 추세지만, 문제는 교육을 위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판사는 법에도 흑백으로 가를 수 없는 회색지대가 많다고 한다. 판결은 그래서 어렵다. 피해자 가족의 증언을 들으면 판사도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감정과 법을 엄격히 분리해야 하는 것이 판사의 직무. 업무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난 2006~2008년 LA 수피리어 코트의 남부지원인 롱비치 법원의 법원장으로 일했을 때였다. 32명의 판사와 수백명의 직원, 법원 시설물까지 총괄해야 해 업무부담이 컸다.
그는 판사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판사가 직무 충족감이 크다고 전한다.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지만 그 자신의 판단으로 사람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년 전 민사법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편하려면 그대로 있는 것이 좋았지만 검사 시절까지 더하면 28년간 형사사건만 해 왔다. 도전이 없어지고 업무 흥미도 반감됐었다.
재판은 민사가 더 힘들다. 관련 서류가 수십 박스씩 되는 케이스도 있다. 형사법정에서는 판사가 말로 하면 되지만, 민사는 판결문을 직접 써야 한다. 그에게 배당돼 있는 케이스는 현재 400여 건. 변호사이기도 한 법원 서기의 보좌를 받지만 일이 고되다고 한다.
판사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는 재판에 매달려 있다. 민사로 옮기면서 저녁 늦게까지 법원에 남아 재판 자료를 검토하고, 집에 싸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다. 횡령, 사기, 의료사고, 부동산, 계약 등 모두 돈과 관련된 다툼들이 그의 판단을 기다린다.
그는 법조인의 길은 적성에 맞고, 성취동기가 있는 사람만 택할 것을 권한다. 부모의 말만 듣고 로스쿨에 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힘들게 공부해 변호사가 되어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기 힘든 게 현실이지 않느냐고 한다.
수피리어 코트 판사는 6년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나 현직이 출마하면 거의 자동으로 재선된다. 판사 후보까지는 모르는 유권자들이 후보 이름 밑에 ‘판사’라고 되어 있으면 거기 표를 던진다. 검증된 후보라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 한인들이 선거로 판사가 된 것은 현직이 없는 자리였다. 36살에 판사를 시작한 그는 지난해 다시 연임됐다. 2025년이 그에게는 마지막 선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일제 치하 당시 미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애국지사 송헌주 선생이 김 판사의 외증조부. 김 판사는 샌타바바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보내져 9살 때까지 할머니 손에서 컸다. 이 때문에 영어권인 후배 판사들은 물론 한국서 온 법조인들과도 잘 어울리는 특유의 친화력과 교유의 스펙트럼이 넓다.
판사를 지망하는 한인검사나 변호사들이 판사로서는 가장 선배인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인판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그런 후배들을 기꺼이 돕지만 한 가지 약속을 앞세운다. “도와 줄 터이니 다음에 판사가 되려는 후배가 있으면 반드시 도와 줄 것”이 그가 내세우는 조건이다. 판사가 되려면 업무 능력과 함께 법조계의 평판, 검사라면 동료 검사들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주지사 지명인 경우에도 너무 정치적이라는 평이 돌면 역풍을 맞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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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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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든 검사든 법대로 판결하는 그런 직업의식을 갖춘 전문인이 되엇으면합니다 정치적이니 권력이니 하며 어느쪽으로 치우친 이라면 일찌감치 장사로가는게 더 많은 돈을 권력을 얻을수도 있을지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