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세계는 리얼리즘의 세계이다. 다들 건강하고 게으른 것도 아닌데 모두 놀고 있다. 일을 안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서 이다. 반 지하 거실 창 밖에는 술객이 허구한 날 노상 방뇨를 하고 고성을 지른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양말을 조명 기구에 말리는 현실에서 태양의 빛조차도 부의 정도에 따라서 분배되고 있는 모습이다.
가부장인 기택은 실직한 운전사이지만 자상하다. 반대로 그의 아내 충숙은 예의가 없고 시종일관 말끝마다 반말이다. 두 자녀는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돈이 없어 학원과 원하는 대학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빈곤의 수렁에 갇힌 가족은 반 지하 냄새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자리를 찾아 무료 와이파이 신호를 따라 출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평생을 갇혀 살면서도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긴다. 그러한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그들만의 세상 안에서 어느 정도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의 기교, 잔꾀, 영리함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친구 소개로 기택이 영어 과외 교사로 부잣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영화는 운명의 간단한 비틀기가 시작된다. 박 사장 집의 운전기사와 가사 도우미를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이들이 어떤 큰 포부와 야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이 손발을 척척 맞춘다는 점이다. 가난한 가족은 부자 가족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빨리 배운다. 기회가 생길 때 본능적인 순발력을 발휘하고 필사적으로 달라 붙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 남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을 찾기 위해 운명의 간단한 비틀기 좀 했을 뿐인데 부자들의 단순함과 순진함이 알쏭달쏭한 거짓말과 이치에 맞아 떨어지는 기가 막힌 왜곡이 먹혀 들어가 박 사장 가족들이 쌓아온 구도를 굴절시키거나 부러뜨린다. 자식들이 사기를 쳐도 “넌 계획이 다 있구나” 격려하는 아버지, 무능한 부모를 따르는 딸과 아들, 일하지 못하는 남편을 재촉하지 않는 아내는 원망과 분노 어떤 감정도 품지 않은 채 마치 서로를 믿고 보듬는다. 봉준호 감독은 옳고 그름의 정의를 말하기 보다 사회가 그들에게 강탈한 윤리와 양심을 영리함과 코믹으로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이 영화는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 구조 밑에 집요하게 따라붙는 빈곤의 나락으로 잘못 안내되는 사회 조직에 대한 세상이 이들 가족에게 씌워 놓은 덫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택은 코너 링에서 딴 점수를 냄새를 통해 잃는다. 미술 치료사인 척하는 기정은 냉랭한 양심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상적인 콘 게임(con-game) 본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박 사장은 능력 있는 가장이지만 편견의 잣 대로 남을 평가하며 보이지 않는 선을 강조한다. 그의 아내 연교는 돈에 길들여진 속물이면서 복잡한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심플한 여자이다.
근세는 젖병을 물고 바나나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며 박 사장에게 모르스 부호로 감사와 존경의 신호를 보내고 “너희들이 뭐 알겠어” 히죽 히죽 비웃으며 자본주의 리더들을 숭배하며 광기어린 살인을 저지른다. 깐소네에 맞춰 춤을 추거나 차를 마시며 주인 행세를 하는 문광은 “같은 일 하는 사람끼리…언니 제발 불우 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언니야” 자기의 치부를 눈감아 달라고 애처롭게 사정하다 눈 앞에서 기택 가족의 사기극이 들통나자 “이거 뭐야, 으-응, 야 ! 어쩐지 윤 기사 갑자기 짤릴 때 부터 이상하더라니” “저기 동생” “동생은 얼어죽을, 아가리 닥쳐 XX년아” 갑자기 돌변하여 위세 당당한 기세로 기택 가족을 일거에 제압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항상 결핍을 안고 있기 때문에 기생충은 숙주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지 않으려 애써 보지만 빌어먹을 그 놈의 냄새가 그만 선을 넘고 만다. 비극의 난투극에서 기택은 악취 때문에 코를 움켜지는 박 사장을 보고 항상 감사를 표하는 그를 향해 이성을 잃는다. 악취의 냄새가 그들이 빼앗아버린 햇볕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태양마저 빼앗아 버리는 짓을 저지르고도 순수하게 착한 척 사는 것을, 그리고 벌레 취급한 것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끼며 살인을 저지른다. 사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함께 죽지만 용케 그 숙주의 몸을 빠져 나온 기택은 새 숙주에게 몸을 옮겨 생명을 이어간다. 예상치 못한 기발하고 참신한 대 반전이다. 통속적인 이야기를 교활 하고도 영리하게 살짝 비틀면서 재미있는 코믹으로, 끔찍한 스릴러로 풀어가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버금갈 정도로 성격 묘사와 심리 해부에 놀라운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오스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장편영화상 여섯 개 부문 후보에 올라, 다가오는 2월 9일 시상식에서 수상을 할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솔직히 말해 수상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아카데미상은 국제 영화 시상식이 아니라 미국의 영화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세계 3대 영화제는 칸 영화제와 함께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이다. 영어 문화권에 국한된 오스카는 그들만의 로컬 상이다. 이 상은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가 수여한다. 이 단체의 회원은 대부분 할리우드 미국 영화업계 종사자들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장편영화상은 수상할 가능성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부문의 상은 순수 작품만을 기준으로 심사한다면 기대 반이며, 할리우드 영화 산업은 흥행을 목표로 거대한 자금이 투자되기 때문에 할리우드 제작사들의 입김이 강해 우려 반이다. 과연 ‘기생충’이 편견의 장벽을 부수는 대 이변을 연출할지 기대 반 우려 반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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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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