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최적임 여성이 이기기를(May the best woman win).”
뉴욕타임스가 지난 19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서추세츠)과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미네소타)을 공식지지하면서 끝맺은 말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지로 선거 판도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두 여성 후보에게 힘이 실릴 것만은 분명하다.
2020 대통령선거를 위한 후보지명전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2월 3일)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성’이 민주당 경선 이슈로 부상했다. 갑작스런 일은 아니다. 물밑에 맴돌고 있던 성차별 정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뿐이다.
워런, 클로버샤 그리고 중도하차한 카말라 해리스 등 여성후보들은 경선 출마를 선언한 순간부터 집요하게 따라붙는 한 질문에 맞서야 했다. “여성이~ 할 수 있겠어?”라는 의문이다. 이런 의구심을 워런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슈화했다. 여성표 집결 의도일 것이다.
발단은 2018년 사적인 식사자리에서 나온 버니 샌더스의 발언이었다. 경선 경쟁후보인 샌더스는 “여성이 2020 대선에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워런이 공개했고, 샌더스가 이를 부인하면서 “거짓말!” 공방으로 번졌다. 오랜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곧 잠잠해졌지만, 결과적으로 여성 지도자에 대해 유권자들이 갖고 있을 어떤 불안감을 정면에 끌어낸 효과가 있다.
2016년 대선 이후 미국은 크게 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에게서도 볼 수 없던 과격함으로 통치를 하고 있다. 국제사회와의 공존을 거부하는 미국우선주의, 강경한 반 이민, 백인우월주의를 감싸는 백인중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불사하는 개발우선 정책 등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미국을 이끌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품격도 일관성도 없는 그의 리더십에 공화당 지지층은 ‘카리스마’라며 환호하고 민주당 진영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다. 2020 대선에서 전국의 민주당 유권자들이 바라는 단 하나의 목표는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우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이 할 수 있을까”는 구체적으로 “여성이 트럼프와 싸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했던 막말과 거친 행동들을 익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나타난 두 가지 요인에 주목한다. 트럼프에 대한 중부 시골지역 저학력 백인들의 절대적 지지 그리고 오바마 때에 비해 줄어든 전통 민주당 기반의 지지이다. 힐러리에게 몰릴 것으로 기대했던 무당파 대졸여성들의 지지도 예상보다 저조했다.
민주당의 고민은 이들 두 요인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인가이다. 트럼프에게 빼앗긴 백인 표를 되찾아 오려면 중도적 백인 유권자들에 어필하는 후보가 필요하다. 조 바이든이 적임자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반면 민주당의 전통 표밭을 흡수하려면 충성스런 기반인 여성과 소수인종, 진보진영, 젊은 층에 어필하는 후보가 필요하다. 진보의 기수 샌더스가 뜨는 배경이다.
뉴욕타임스는 진보성향 후보로 워런, 중도성향 후보로 클로버샤를 공식 지지했다. 바이든은 고령, 샌더스는 건강문제와 타협을 모르는 성향을 이유로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성이~ 할 수 있을까”는 20세기 이후 여성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여성이 ‘집사람’이고 ‘안사람’이던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집’과 ‘안’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차별적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참정권부터 대학진학, 취업, 전문직 진출, 단계 단계의 승진 … 편견의 장벽을 넘고 넘어 남녀가 거의 평등해진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단 하나 남은 장벽은 백악관 문턱, 여성이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 건가. 클로버샤의 대답은 명쾌하다. “낸시 펠로시(연방하원의장)는 매일 그렇게 하고 있지요.”
트럼프 집권을 계기로 미국여성들의 정치력신장 운동은 새롭게 도약했다. 여성 비하, 성추행을 자랑삼는 그가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선후보를 꺾고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며 여성들은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입 다물고 있지 않기로 결정했다. 연례 여성대행진이 추진되고, 에밀리즈 리스트 등 관련단체들이 여성들의 정계진출을 적극 지원했다. 결과는 2018년 중간선거에서의 대약진이었다. 연방하원에 35명이 새로 입성하면서 여성하원의원 102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민주당대선 경선에 6명의 여성후보가 도전했던 것 역시 기록이다.
1789년 조지 워싱턴 취임 이후 미국에는 총 45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한사람을 빼고 모두의 공통점은 백인남성. 대통령도 부통령도 여성은 없었다.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 뉴욕타임스가 그랬듯이, 후보들을 역량과 됨됨이로만 평가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여성대통령’은 후보의 능력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정서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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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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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힐러리 때부터 대선에서 남녀차별은 이미 없어졌다고 봅니다. 여성차별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은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이익을 보기 위한 역공작으로 들립니다.
밈주당 후보 어느 누구도 트럼프보단 월등하게 미국 국정을 잘 해 나갈걸로 나는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