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악화하던 미중 무역 갈등이 해결의 가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양국은 미국에서 무역 분쟁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1차 협의안을 도출했다. 중국은 지적 재산권의 보호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미국은 농산물을 수출하기로 한 모양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협의안에 서명하면서 승리를 맛보고자 했지만 중국도 그러한 속셈을 읽고 그동안 협상을 이끌었던 류허 부총리가 협의안에 서명했다. 협의안에 서명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웃고 류 부총리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사진만 보더라도 양국 사이에 있었던 경쟁과 갈등의 양상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중의 무역 갈등처럼 국제간의 현안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국내의 사정에만 밝을 뿐만 아니라 국제의 현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면밀하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얼마 전에는 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의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동맹으로서 호르무즈해협의 파병을 요청했다. 정부는 선뜻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장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호르무즈해협의 파병이라는 동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고 우리나라 원유 도입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경제적 이해가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동의 군사적 대치에 개입한다는 복잡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외부의 목소리와 내부의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 여러 분야의 실무자만이 아니라 지도자가 국제 정세를 비롯해 국제 현안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 면밀한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앞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국제 현안이 승패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라면 국내에만이 아니라 국제 관계에서 기대되는 책임을 다하면서 우리나라의 실익을 챙길 수 있는 국제적 안목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등석(鄧析)이 주장했던 양가지설(兩可之說)의 고사를 살펴보자. 유수(洧水)의 물이 아주 많이 불어났을 때 정나라의 부자가 강을 건너다가 익사했다. 어떤 사람이 그 부자의 시신을 건져서 수습하게 됐다. 부잣집의 가족은 그 소식을 듣고 시신을 수습한 사람을 찾아 사례를 하며 시신을 돌려받고자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워낙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바람에 어찌할 수가 없어 등석을 찾아갔다. 등석은 의뢰인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위로를 건넸다. 부자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은 부자의 가족 외에는 비용을 요구할 수 없으니 그냥 기다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역전되자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 등석을 찾아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어렵사리 익사한 사람의 시신을 수습했더니 그 가족이 제대로 비용을 치르지 않고 시신을 가져가려고 한다는 말이었다. 이번에도 등석은 자신을 찾은 사람에게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위로를 건넸다. 부자의 가족이 장례를 치르려면 결국 시신을 수습한 당사자를 찾아와서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등석의 이 고사를 두고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는 판정을 하지 않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고 해 양가지설(兩可之說)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당시에만 해도 등석의 양가지설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다. 한편으로 등석이 확실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한다며 나쁘게 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등석이 문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해법을 찾아준다는 점에서 좋게 보기도 했다.
국제 관계에도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겠지만 어제의 적이 이웃이 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제 관계의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려면 현안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을 인지하고 손해를 최소화하면서 이해 당사자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등석의 양가지설은 국제 현안을 자국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고 실험의 실마리를 열어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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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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