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조용한 농촌지역 아이오와 주를 미 대선의 풍향계로 만든 것은 이 첫 경선지에서 깜짝 승리를 거둔 후 그 여세를 몰아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땅콩 농장주 출신의 지미 카터였다.
1840년대에 시작된 아이오와 코커스는 원래 대선 기간의 중간쯤에 실시되었다. 주민들이 가정집이나 교회, 타운홀 등에 모여 선거 이슈와 후보에 대해 토론한 후 투표하는 동네 행사가 미 대선정치의 주요 이정표가 된 것은 1972년 코커스를 5월20일에서 1월24일로 앞당긴 후였다.
베트남전쟁 반대와 경선을 좌지우지하는 당 지도부 전횡에 대한 항의 시위가 격화되면서 유혈사태를 빚은 1968년 민주당 시카고 전당대회 후 경선 대의원 선발규정 개혁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아이오와 주도 경선 관련규정을 바꾸면서 전국에서 대선의 첫 경선지가 된 것이다.
1976년 대선을 향한 민주당 경선의 물밑작전이 한창이었던 때, 전 조지아 주지사였으나 쟁쟁한 정치인들에 밀려 상대적으로 ‘무명 후보’였던 카터는 ‘첫 경선지’ 아이오와에 착안했다. 다른 후보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던 곳이었다.
선두권 후보들은 잘 들르지도 않던 아이오와에 카터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막강한 자원봉사 보병군단을 꾸리고 가가호호 방문 캠페인을 계속했다. 집이 비었으면 쪽지를 남겼고, 만난 주민들에겐 감사편지를 보냈다. 세계 최고의 공직에 도전하는 땅콩 농부의 스토리에 매료된 지역 미디어들은 신선한 아웃사이더의 캠페인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10여명의 저명후보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후 (자신의 예상대로) 전국 미디어가 조명하는 아이오와 승리를 모멘텀 삼아 제3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카터의 전략은 “언더독의 캠페인이 어떻게 이 작은 주의 승리를 디딤돌로 활용해 전국을 제패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고 프린스턴 대학의 정치역사학자 줄리언 젤리저는 평가한다.
그는 또 사람들은 지미 카터를 말할 때 재임 당시의 실패한 국정이나 퇴임 후의 활발한 봉사활동에 포커스를 두지만 ‘미 정치사에 가장 오래 남을 카터 레거시’는 작은 농촌지역의 경선 투표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미 대선의 킹메이커로 만든 1976년 캠페인”이라고 말했다.
카터가 시작한 ‘아이오와 이변’은 그후 40년 동안 종종 일어났다.
2008년 초선 연방상원의원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의 불가침 ‘무적함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거둔 깜짝 1위가 대표적이다. 급등한 젊은 층의 투표율이 가져다준 아이오와 승리로 다소 막연한 이미지의 오바마 출마에 ‘당선 가능성’이라는 일종의 정통성이 부여되었고 코커스 전에 힐러리에 20%포인트나 뒤지던 지지율도 5포인트나 앞서는 반전을 기록했다.
그보다 훨씬 앞서 아이오와 승리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은 아버지 부시다. 1980년 연방하원의원과 CIA국장 경력으로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그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선두주자 로널드 레이건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레이건의 러닝메이트로 지명 받아 부통령이 되었고 그 후 대통령 당선, 아들 부시의 2선 대통령 역임으로 이어진 ‘미국의 정치명문’ 부시가의 초석도 아이오와 승리에서 시작됐던 셈이다.
실제로 ‘이변’이 많은 것은 아니다. 1972년 이후 현직 대통령 아닌 민주당의 아이오와 승자 10명 중 7명은 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공화당의 경우 승자 8명 중 3명만이 당 후보가 되었고, 아이오와 승자의 대선 승리는 민주당 2명 공화당 1명에 불과했다. 1992년엔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아이오와 연방상원의원 톰 하킨이 76% 득표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나 경선과 본선의 승리는 아이오와에서 3% 득표에 그쳤던 빌 클린턴에 돌아갔다.
“아이오와는 너무 하얗고, 너무 늙었다…” 주민 90%가 백인이고 농업 위주인 아이오와는 다양하게 변하고 있는 인구 측면으로도, 사회·경제 측면으로도 미 전체를 대변하기 힘든데 대선의 첫 경선지로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첫 경선을 각 주에서 순번제로 치러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다.
그래도 아직은 ‘좋은 전통’이라는 여론의 지지가 57%나 된다. 앞이 안 보이는 접전에선 아이오와가 더욱 조명을 받는다. 금년 민주당 경선의 주자들도 7월 이후 800여회 지역행사에 참여하면서 아직 60%가 마음을 못 정했다는 아이오와 표밭을 향해 구애를 펼치고 있다.
2월3일의 코커스를 3주 앞둔 14일 아이오와에서 열린 7차 민주경선 후보토론에선 뚜렷한 승자도, 휘청거린 패자도 없었다. 예측불허의 판세를 바꾸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었다는 뜻이다. 오차범위 내 경합을 벌여온 조 바이든,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피트 부티지지의 4명 선두권 주자들의 막상막하 아이오와 지지율은 토론 후에도 별로 바뀔 기미가 없다.
후보들 제각기 확률도 높지 않은 ‘아이오와 이변’을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익사이팅한 새 얼굴을 선호해 ‘선두주자의 악몽’으로 불려온 아이오와 코커스이지만 ‘트럼프를 이길 후보’라는 금년 정치기류로 인해 바이든 진영까지 ‘궁합 안 맞는 아이오와 표밭에서의 승리’를 꿈꾸면서 민주당 경선의 판세는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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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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