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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독립운동 상징’ 2010년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 주관*건립
‘리들리 한인 이민역사기념각’에 김형순, 김종림, 송철 등 10명 기념비
한인 이민자 첫 타운이자 독립운동 요람
미주한인 이민 역사보존과 후대에 정체성 심어주는 역사 현장
독립자금 모금 위해 다녀간 도산 안창호, 이승만 기념비도 있어
일제 강점하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우리 민족의 독립항쟁은 본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중가주의 리들리(Reedley)와 다뉴바(Dinuba)는 1905년부터 형성된 초기 한인 이민자의 첫 집단 정착촌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계약 기간이 끝나 본토로 온 이민자 중 상당수가 리들리, 다뉴바에 정착했다. 가장 많았을 때 4-500여명으로 추정되는 한인들은 농장과 김형제상회 등서 일을 했다. 자연스럽게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항일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가주지역 이민선조들은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인들은 대부분 농장 노동자로 힘들게 일하면서도 일제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 독립자금을 모아 보냈다. 중가주지역에서 1918년과 1919년에 걸쳐 독립운동을 위해 기부한 금액이 총 1만3,835달러이다. 조국독립에 대한 열망을 담은 독립자금 기부자 명단(85명)은 다뉴바 한인교회당 자리에 세워진 기념비에 기록돼 있다.
본국에서 1919년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1년 후인 1920년 3월 1일에는 다뉴바 한인장로교회에서 3.1절 1주년 기념식과 시가행진을 펼쳤다. 이 교회는 1920년부터 매년 3.1운동 기념식을 거행했다. 지난 2012년과 2019년에도 3.1절 기념 퍼레이드 재현 행사가 열렸다.
또 1919년 8월에는 한인여성 대표들이 다뉴바 한인장로교회에 모여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 ‘일본 간장 안먹기’ 캠페인을 펼쳤다. 1937년에는 중가주의 팔리어, 생거, 리들리, 다뉴바, 델라노 등 5개 지역 연합으로 시가행진과 3.1절 경축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중가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농장과 교회를 중심으로 단결을 도모했다. 1914년 5월 다뉴바에 국민회 북미지방총회가 설립된 이후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리들리 ‘한인이민역사 기념각’ 내 서 있는 애국지사 기념비를 유형섭 전 S.F 코리안센터 이사장(왼쪽)에게 김명수 중가주 애국선열 추모회장이 설명하고 있다.
독립문과 애국지사 기념비 건립
미주 초기 이민 한인들의 첫 한인타운이자 조국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리들리에 지난 2010년 11월 13일 독립문과 애국지사 10인 기념비가 건립됐다. 조국독립을 위해 삶을 바친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미주 한인 이민자들의 삶과 독립운동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현장에 선조들의 애국 활동을 기리기 위한 ‘리들리 한인 이민역사 기념각’이 마련된 것이다.
독립문과 기념비 건립사업은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회장 차만재 교수)가 적극 나서 리들리시가 건립부지(163평)를 포함하여 10만달러를 제공했다. 본국의 국가보훈처가 9만달러를 지원하고 중가주역사연구회가 모금한 3만달러 등 총 22만달러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장소는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이며 애국지사인 김형순씨 자택과 김원용씨가 재미한인50년사를 집필하고 김호가 출판한 김호씨 자택이 독립문과 기념비를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리들리 독립문은 1897년 서울에 세워진 독립문 원형을 4분의 1 크기로 축소한 것이다. 높이가 14피트로 한글로 ‘독립문’이라는 현판이 설치되어 있다.
독립문에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상징하기 위해 세운 역사적인 건축물인 독립문 축소물을 한인이민 역사 보존과 미국의 다인종 다문화 단합 및 독립정신 증진을 위해 헌정한다“고 쓰여져 있다.
애국지사 10인 기념비
독립문앞 작은 광장에는 안창호, 이승만 등 애국지사 10인의 기념비가 두 줄로 서있다. 비석 앞뒤에는 인물 사진과 함께 연혁과 애국활동 내용이 영문과 한글로 적혀 있다 . 차만재 교수는 2010년 당시 제막식에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될 한인 후손들에게 생생한 역사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비록 모형물이지만 독립문은 한인이민사를 기억하는 현 세대가 없어져도 정체성에 답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들리 이민역사기념각‘에는 이승만 건국대통령(1875-1965)을 비롯하여 도산 안창호(1878-1938), 윤병구 목사(1882-1949), 이재수(1880-1956), 김종림(1884-1973), 김호(1884-1968), 한시대(1888-1981), 김형순(1886-1977), 송철(1894-1986), 김용중(1898-1975) 등 애국지사 10명의 기념비가 서있다.
리들리 기념비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김종림 기념비. 쌀 농사로 성공하여 윌로스 한인 비행학교 설립에 기여한 공적이 한글로 기록되어 있다. 비의 다른 한쪽에는 영어로 적혀 있다.
도산 안창호 기념비. 독립운동 모금을 위해 중가주를 다녀갔다. 기념비 옆에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김형순 기념비. 복숭아 재배와 신품종 개발로 백만장자가 되어 독립과 한인사회를 위해 헌신한 내용이 인물 사진과 함께 영문으로 적혀있다.
김 형 순 (1886-1977)
o 188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탄생, 1903년 한인 하와이 이민 통역관으로 하와이에 이민, 1916년 리들리에 정착
o 김호와 공동 설립한 김형제상회의 털없는 복숭아 재배로 큰 부를 축적함
o 한인들이 김형제상회에서 취업을 하면서 리들리 한인타운이 형성됨
o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을 10년 연임, 한반도 중립 통일운동 지원
o 리들리 미국인교회들과 라이온스클럽에서 모은 기금과 구호물자로 한국전쟁 고아 난민 구호운동을 펼침
o 김호와 공동 설립한 리들리한인재단으로 장학사업과 평택에 꽃동산 고아원을 설립
o 선생이 헌납한 1408 ’J‘ Street 대지에 1938년 교인들이 목조건물의 리들리 한인장로교회를 손수 건축; 평생 이 교회의 창립 장로로 시무
o 2004년 리들리시는 김형제상회와 한인들의 리들리 지역 경제발전의 공헌을 기념하여 김형순 선생의 생지 통영시와 자매도시를 맺음
o 김형순 선생의 출생지 통영시에서 이 기념비를 헌정함
o 한국정부가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 호 (본명 김정진, 1884-1968)
o 서울 탄생. 상해를 거쳐 1914년 유학차 도미, 상해에서 여운형과 친분을 맺음
o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평양의 대성학교와 배재 및 이화학당에서 수학, 물리, 영어 교사를 지냈음
o 김형순과 공동 설립한 리들리 김형제상회의 성공으로 재산과 명예를 얻음
o 1919년 다뉴바에서 창당된 노동사회 개진당 총무,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북미 한족연합위원회 중앙집행위원장,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적산분과위원장
o 해방된 조국에 안익태 작곡 애국가를 소개
o 리들리 한인재단을 통한 장학사업
o 한반도 중립 통일을 국내외로 지원
o 동지 김원용을 지원 집필케 한 ”재미한인오십년사“를 1959년 리들리에서 출판
o 2006년 로스엔젤스 통합 교육국은 로스엔젤스 한인타운 내 신설 소학교를 김호 이름으로 명명함
o 199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김 종 림 (1884-973)
o 함경남도 원산 출신. 1903년 하와이로 이민, 1906년 캘리포니아로 이주
o 1908년부터 포도 따는 일로 프레즈노에서 초기이민 생활을 시작, 프레즈노 공립협회 사무소를 개설해 한인들의 직업 알선과 조국의 운명을 논하는 정치토론회를 인도함
o 쌀농사 기회를 포착, 1913년 북캘리포니아 코루사카운티로 이주
o ’쌀 왕‘이라는 칭호를 들을 만큼 쌀농사에 대성공을 이루어 만석꾼이 됨
o 많은 재산을 윌로우스 벼농장에 일본을 대결할 전투 비행사를 키울 한인 비행사 양성소 설립에 투여, 광복군 전투력 강화에 기여
o 흥사단 창립 단우였지만 평생 동지회 회원으로 활약
o 1920년 장마대란으로 재산을 잃은 뒤 여생을 리들리 근처 센터빌에서 농사를 지음
송 철 (1894-1986)
o 전라북도 금산에서 탕생. 1917년 상해 경유 미주 유학
o 1925년 로스엔젤스에 설립한 한인 최초의 과일위탁판매업소와 1956년부터는 다뉴바 근처 설타나에서 털없는 복숭아 재배와 과일 포장사업으로 재력가가 됨
o 37세에 가주 주립 버클리대학에서 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만학도
o 평생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지지한 북미동지회 지원자
o 6.25 한국전쟁으로 폐허된 조국과 고아 구제물품 및 기금모금에 앞장섬
o 차세대 한글 전통 문화교육 선구자: 한글학교 한인교육기관의 전신인 무궁화학원을 1972년 로스엔젤스에 설립
o1994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독립문에 새겨져 있는 헌정문. 조선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한인 이민역사 보존과 다인종 다문화 단합 및 독립정신 증진을 위해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태극기와 성조기도 게양되어 있다.
한 시 대 (1888-1981)
o 황해도에서 탄생. 1904년 소년기에 하와이로 이민,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다 다뉴바로 이주, 1920년대부터 데라노에 정착
o 샌프란시스코의 명문 로웰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영어를 통달
o 다뉴바 한인 예배 모임의 서기로 활약, 1912년 다뉴바 한인 장로교회 창립에 견인차 역할
o 1920년대 농사 지을 기회를 찾아 다뉴바 남쪽 데라노로 이주
o 한시대는 1923년 데라노 아메리카 은행 지점장에게 두 빈손을 내밀며 이것이 내 담보이니 1천불을 차용해줄 것을 간청. 그 담대함에 탄복한 은행장이 대부해준 1천불로 대지를 임대 농사를 지어 농장주로 큰 부를 쌓음
o 한시대 농장에 한인들이 모여들면서 데라노에 한인타운 형성
o 1936년 데라노 한인감리교회 설립
o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해외 한족연합위원회 북미 집행위원장 및 공동위원장 역임, 해방후 한족연합위원회 모국방문단 일원으로 귀국
o 안창호 선생 교훈 실천에 충성을 다한 흥사단 단우
o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이 재 수 (1880-1956)
o 경기도 출신 왕족. 1903년 이민 대열에 합류, 하와이로 이민
o 1906년부터 포도 따는 일로 프레즈노에서 이민생활 시작. 프레즈노 공립협회 간부 및 정치토론회 창립 임원
o 1909년 700에이커 프레즈노 포도원 포도수확 계약 확보에 성공. 한인들이 다뉴바에서도 포도 따는 일을 계약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됨
o 쌀 농사 기회를 찾아 북가주 코루사카운티로 이주하여 맥스웰에서 쌀농사로 크게 성공. 손자가 쌀 농사를 유업으로 이어받음
o 다뉴바에 살면서 1만불의 거금을 지참하고 1920년 미국에 입국한 왕족이나 거상 집안의 출신으로 추정되는 백신실 여사와 결혼
o 김종림 선생의 윌로우스 한인 비행사 양성소 재무 이사
o 평생 충실한 흥사단 단우. 대한인국민회와 독립운동 후원자
o 한국정부가 2018년 건국 포장 추서
윤 병 구 목 사 (1882-1949)
o 서울 태생으로 한성사범학교와 배재학당에서 교육을 받음. 영어가 뛰어나 선교사들의 통역을 맡아보면서 신학공부를 하여 전도사가 되어 1903년 하와이로 파송
o 구한말 정부밀사들의 1905년 티오도 루즈벨트 대통령께 뉴햄셔 포츠머스에서 열릴 일로전쟁 평화협상에서 조선의 국권을 보호해줄 것을 간청. 1907년에는 화란(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 책략을 폭로하는 외교 임무를 도왔음
o 하와이에서 신민회를 조직 정치개혁운동. 샌프란시스코 한인감리교회 중심으로 한일병합 반대운동 전개. 1912 년 하와이 국민회 회장. 1919년 샌프란시스코 국민회 본부 총회장에 선출
o 리들리 한인감리교회 홈미숀 목회(1922-1929), 리들리 한인장로교회 목사(1946-1949)
o 이승만 대통령의 권유로 대한민국 정부 초대 외무부 고문으로 봉직 중 순직
o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도산 안 창 호 (1878-1938)
o 평안남도 강서에서 1878년에 탄생. 1902년 유학차 도미
o 한인들의 으뜸가는 해외시민정치단체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반을 세움
o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인격수양단체 흥사단을 설립한 도덕가, 한민족의 정신적 지주
o 1910년대 도산의 잦은 리들리 다뉴바 방문에 이어 1917년 다뉴바에서 흥사단 시국 강연회
o 부인 안혜련 여사는 1910년대 여름마다 다뉴바에서 포도를 땄음
o 도산의 격려로 1919년 다뉴바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이 결성됨
o 도산의 독립운동 지원금으로 1919년 중가주 핵심지역 새크라멘토 윌로우스 맥스웰 메리스빌 다뉴바의 한인들이 1만3천6백불의 거금을 모금했음
o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이 승 만 박사 (1875-1965)
o 대한민국건국 대통령
o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하여 리들리 다뉴바 한인 마을들을 자주 방문
o 1900년대 미국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모범생 정치 지도자 애국자
o 이승만 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가 결혼하여 리들리와 다뉴바를 방문한 1935년 중가주 한인들이 다뉴바에서 신혼부부에게 결혼 축하 만찬을 베품
o 한국전쟁(1950-1953)중 철저한 반공주의로 위기를 극복, 나라를 다스렸음
o 수십년 해외 정치 망명 생활 후 귀국하여 모국 국권회복 근대화 기반을 세우는데 공헌
o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여
김 용 중 (1898-1975)
o 충청남도 금산읍에서 탄생. 1916년 상해 경유 미주로 유학
o 콜럼비아 하바드 죠지 와싱톤 남가주대학에서 유학생활. 과일위탁판매업을 병행하면서 여름 수확기엔 형제상회 과수원과 과일 반입관리인으로 리들리에 거주
o 재미한민족연합위원회 와싱톤 외교부 수석 외교관, 대한인국민회 섭외 담당, 신한민보 영문판 주필 및 발행인
o 1943년 와싱톤에 설립한 한국문제연구소의 영문월간지 ’한국의 소리‘를 통해 오스트리아나 스위스를 본딴 한반도 중립통일론을 일생 역설함
o 한반도 중립, 통일, 민주화 운동의 선구
o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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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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