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8월 다카(DACA)가 발효됐다. 일정 요건을 갖춘 서류미비 청소년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 뉴스를 처음 접한 순간 먼저 전화부터 한 군데 걸었다. 땡볕 아래서 아웃사이드 페인팅을 하고 있던 그가 전화를 받았다. 보도자료를 보면서 다카의 내용들을 설명해 드렸다. 저녁에 집에 가시면 아이들과 꼼꼼히 한번 살펴보시라는 말과 함께.
다카 소식을 듣자마자 그가 생각난 것은 지난 십수년 간 두 아들의 체류신분 문제가 이 가족의 절박한 기도제목이었던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창 나이의 아이들이 과속 티켓 한 장 끊는 게 대단한 잘못은 아니지만 티켓 한 장만 받아도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게 조심하면서 운전하라고 했는데…”. 원망부터 나왔다. 무면허 운전이었기 때문이다. 영주권이 없으면 운전면허도 없던 때였다. 있으면 아무 것도 아닌데, 없으면 온갖 게 다 걸리는 영주권.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패사디나의 크리스틴 박(27)씨는 다카 수혜자이다. 지난달에 3번째 갱신을 신청했다. 승인이 되면 2년 연장되고, 아니면 올 12월이면 그의 합법체류 신분은 끝이 난다. 그 뒤는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알려진 것처럼 연방대법원은 오는 6월께 다카의 존속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대법관들의 성향 상 판결의 추가 폐지 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전해지고 있다.
서류미비 한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체류신분을 알게 되는 것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할 무렵이다. 그전에는 부모들이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틴도 체류신분 문제를 절실하게 느낀 건 그 때였다.
10살 때 미국에 와 토랜스에서 초중고를 나온 그는 진학할 대학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는 여기도 안 돼, 저기도 안 돼, 라며 퇴짜를 놓았다. “왜 안 되는데?” 이유를 몰랐다. 소셜시큐리티 번호가 없다는 걸 그때 알고 아하, 일이 이렇게 된 거구나 깨달았다.
서류미비자는 비거주자 학비를 내야하기 때문에 등록금 액수가 크게 달랐다. 칼 그랜트 등 학비지원 혜택은 원칙적으로 봉쇄돼 있었고, 서류미비자 학비보조 프로그램도 모르던 때였다. 부모들은 체류신분이 불안한 아이들을 멀리 보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들 가족 중에서 미국서 태어난 오빠는 시민권자이고, 엄마 아빠도 영주권자. 크리스틴만 빠졌다. 고생할 때는 시민권자인 오빠가 괜히 미웠다. 부모도 많이 원망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나 때문에 부모님이 고생하시는구나, 내가 없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카가 시행됐다. 살 것 같았다. 당당하게 세금 내고 일하면서 돈도 제대로 받았다. 한 동안은 좋았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모두 안 된다고 했어요. 될 리 없다고, 걱정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가 됐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우려대로 트럼프는 당선 후 다카 폐지를 밀어붙였다.
크리스틴은 다카 갱신 때 민족학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인연이 돼 민족학교의 일에 동참하고 있다. 다카 캠페인을 위해 워싱턴에도 여러 번 가서 유명 정치인들에게 지원을 호소했다. 2017년에는 미 서부 자전거 종주 캠페인에 참여해, 새크라멘토에서 샌디에고까지2주간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면서 다카의 필요성을 알렸다.
한인이라고 모두 다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UCLA에서 캠페인을 할 때, 한 한인학생이 와서 그랬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미국 와서, 비싼 학비 내고 학교 다니고 있다. 왜 내가 당신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사람마다 사정은 천차만별이라고 크리스틴은 말해 줬다. 서류작성 때 착오로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비자 기간을 넘긴 사람도 있고, 소셜시큐리티 카드를 분실해 갱신 기회를 놓친 사람도 있다고 항변했다.
크리스틴은 다카를 ‘반창고’라고 했다. 상처만 가린 미봉책이라는 것이다. 다카가 있다고 소셜 베네핏이나 영주권을 받는 것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취직할 때 다카라고 하면 반기지도 않는다. 다카가 시민권 신청으로 이어져야 근본 문제해결이 될 수 있지만 지금 행정부는 그 ‘반창고’마저 떼어내려 한다.
올해는 센서스가 있고, 선거도 있다.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 추이를 보아가며 이민자 권익옹호 단체들은 대응책을 모색할 계획이다. 다카 폐지는 ‘드리머’로 불리는 70만명 가까운 미국 젊은이들의 삶의 근거를 박탈하는 잔인한 일이다. 한인 다카 수혜자 6,540명 중 한 사람인 크리스틴 박씨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모든 다카 수혜자, 서류미비자들이 절망하지 않는 한 해가 됐으면 해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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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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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쉽지 않은 문제인 데, 개인적으로는 모두 구제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무섭고 잔인한 들판 야산의 동물보다 사람이 제일 잔인하고 무서운것 같군요, 젊고 대학도 나와 일할능력도 마음도 기술도 있어 일해 세금도 내고 당당하게 미국 국익에 많은 도운이 될 자를 여기에서 크며 미국외엔 아는게없는 쌩판 모르는 나라로 내 쫏겠다... 이 무지하고 험악하고 무자비한 그쌩각은 어디에서 나왔는가...참 하늘 볼 낮 없는 인간의 밋낮인것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