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무서운 존재를 말할 때 흔히 호환마마에 비유했다. 오랜 옛날 사람이나 가축이 호랑이에게 물려 화를 당하거나(호환), 멀쩡하던 가족이 마마(천연두)에 걸려 백약이 무효로 죽어 가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 슬픈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저출산, 빚, 도박, 메르스(MERS), 에볼라(Ebola), 양극화, 전쟁 등을 호환마마에 비유하는 경우를 본다. 수긍이 간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호환마마를 든다면 지구의 ‘기후위기’가 아닐까 한다. 앞의 것들은 그 피해가 대략 어느 일정한 지역이나 일부 피해자들에게 국한되지만, 기후위기는 예외 없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 모든 생물들에게도 해당되는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구의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를 인류 전체의 가장 무서운 호환마마로 알고 심각하게 대처하려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참으로 답답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타임지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어린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세, 스웨덴)와 주고받은 트위터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류의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한 어린 소녀에게 축하와 격려 대신 ‘분노조절’을 위하여 영화나 한편 보라는 비아냥 담긴 내용을 보냈다. 지구 최강대국 어른 대통령과 한 어린 환경운동가가 설전을 벌이는 격에 맞지 않는 민망한 모습이었다. 인류의 산업화가 기후변화를 초래했다는 과학적 주장을 거짓이요 사기로 치부하는 트럼프 대통령다운 모습이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에 비하여 유독 환경위기에 무관심한 면이 있지만, 반드시 그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온 나라가 물에 잠길지 모르는 작은 섬나라들과 유럽의 정상들 외에 대부분의 정상들은 아직도 기후변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소홀하다.
지난 12월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200여 국가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5)가 이를 말해준다. 참가국들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배출 추가 감축 목표치에 합의하지 못했다. 겨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긴급 행동이 요청된다”는 정도의 원론적 공감대만을 확인한 거의 맹탕 수준의 무기력한 회의였다.
이번 제25차 COP25를 앞두고 안토니우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는 지금 글로벌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은 더 이상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눈앞에서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다”며 기후위기를 경고하였다. 사실 유엔 총장의 연설 이전부터 지구는 자신의 몸으로 우리에게 그러한 말을 건네 오고 있었다.
여름철은 최근 몇 년간 지구에서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되었고, 해수면 수위는 인류 역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극지의 만년설이 전례 없는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고, 바다는 점점 더 산성으로 변하고 쓰레기로 넘치고 있다. 기후 관련 자연재해는 점점 더 자주, 더 치명적이고 더 파괴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생명과 재산 피해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것은 이것이 자연이나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는 지구에 사는 인류의 생명과 안전은 물론 다른 동물들에도 영향을 준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거주지를 파괴하고, 숨 쉬는 공기와 마실 물 그리고 식량 생산에 영향을 준다. 기후변화와 연관된 대기오염은 매년 7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더 이상 기후위기와 인권, 경제, 복지, 평화, 인류의 행복, 후손의 미래를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 기후가 인권이고 평화이며 행복이다.
이번에 153개국의 1만1,0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은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인류의 과감한 행동이 없다면 ‘인류는 막대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새로운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미국은 탄소감축에 동의하기는커녕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대로 만일 그가 재선되면 차기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2020년 11월4일 파리기후협약 공식탈퇴를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역주행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우리는 스웨덴 어린 환경운동가의 호소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이 시대의 호환마마다. 이제 정치인들과 대중들은 탐욕, 자국이기주의, 이념을 넘어 지속가능하고 평등하며 조화로운 ‘지구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여기서 나부터 지구 온난화를 늦추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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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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